이 한 권의 책: 콘서트홀 X 오케스트라

도요타 야스히사, 히야시다 나오키, 우시오 히로에 지음 / 이정미 옮김
도서출판 에포크(Approx. 18,000원 / eBook 12,600원)

 

올초 한국어로 출간된 ‘콘서트홀×오케스트라’는 세계적인 음향 설계사 도요타 야스히사와 음악평론가 하야시다 나오키, 음악 저널리스트 우시오 히로에의 대담을 엮은 책이다. 산토리 홀,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 필하모니 드 파리, 엘프필하모니 등 세계적인 공연장의 음향 설계에 참여한 도요타 야스히사의 경험을 중심으로, 콘서트홀의 음향을 넘어 클래식 음악의 본질과 미래까지 폭넓게 탐구한다.

1장에서는 코로나19 시기 오케스트라가 사회적 거리두기를 시행하면서 연주자 간 간격이 음향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리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 공연장의 음향은 어떻게 달라질 것인지를 전망한다. 이어지는 2장에서는 콘서트홀의 음향을 본격적으로 다룬다. 프랭크 게리, 장 누벨 등 세계적인 건축가들과 협업하며 공연장을 설계한 과정, 완공 이후 카라얀, 게르기예프, 살로넨 같은 거장 지휘자들과 리허설을 진행하며 음향을 조율했던 경험이 생생하게 소개된다. 또한 지휘자의 음악관과 리허설 방식에 따라 같은 공간에서도 소리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그것이 오케스트라의 발전과 어떤 관계를 맺는지도 흥미롭게 설명한다.

이 책의 장점은 단순한 경험담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곳곳에 배치된 ‘한뼘탐구’코너에서는 음향의 기본 원리, 콘서트홀의 유형, 음악 공간의 역사, 지방 콘서트홀의 활용 방안 등 이론과 정책까지 함께 다룬다. 오랜 시간 클래식 음악계에서 축적된 전문 지식이 알기 쉽게 정리되어 있어 음악 애호가는 물론 일반 독자에게도 유익하다. 나아가 악단과 지휘자의 궁합, 빌더형·트레이너형 지휘자와 카리스마형 예술가의 차이, 상주 오케스트라와 이른바 ‘신데렐라 오케스트라’의 특성 등 전공자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주제도 폭넓게 다룬다. 특히 277쪽 이후에는 세계 여러 나라 공연장에서 일하는 관계자들의 사례를 통해 오케스트라의 운영과 발전을 위한 정책적 고민까지 소개한다.

클래식 팬이라면 공연장에서 느끼는 소리의 차이가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 실질적인 지식을 얻을 수 있다. 전문적인 음향공학 이야기를 대담 형식으로 풀어내어 일반 독자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으며, 음악이 건축과 기술을 만나 어떻게 이상적인 소리를 구현하는지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된다. 그러나 책이 궁극적으로 주목하는 것은 건물이나 기술이 아니라, 그것을 설계하고 연주하며 운영하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다양한 이야기를 발판 삼아 클래식 음악계를 거시적·미시적으로 함께 바라보게 만드는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다.

책을 읽다 보면 결국 하나의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우리는 왜 클래식 음악 전문 공연장을 지어야 하는가.” 현실에서는 “수요도 많지 않은 클래식 애호가들만을 위한 공간보다 다양한 행사를 수용할 수 있는 다목적홀이 공공성을 높이지 않겠느냐”라는 반론을 자주 듣는다.

부산에 오페라하우스를 짓는 대신 야구장을 하나 더 지어야 한다는 주장도 낯설지 않다. 클래식 음악을 전공하고 관련 분야에서 활동하는 필자 역시 이러한 시선과 끊임없이 마주하며 클래식 음악의 필요성과 가치를 설명하고 설득해야 하는 순간이 많았다. 그래서 이 책에 담긴 저자들의 고민은 더욱 깊이 공감되었다. 비슷한 문제를 오랫동안 고민해 온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이 제시하는 창의적인 해결책과 통찰은 큰 도움이 되었다. 무엇보다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적지 않은 위안이었다.

클래식 음악을 지키고 설득하는 길은 늘 고독하고 힘든 싸움일 수 있지만, 이런 대담과 기록은 같은 고민을 나누는 동료가 있다는 확신을 준다. 우리 주변에서도 변화는 나타나고 있다. 아트센터인천은 이제 인천 시민들의 자랑스러운 문화공간으로 자리 잡았고, 부천아트센터는 개관한 지 불과 3년 만에 필자가 지난 30년 동안 부천에 방문했던 횟수를 훌쩍 뛰어넘게 만들었다.

한편 대한민국 제2의 도시라는 위상에 비해 클래식 문화 기반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던 부산 역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부산콘서트홀과 부산오페라하우스, 낙동아트센터 등 문화시설이 들어서면서 공연마다 매진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2일부터 8일까지 열린 부산콘서트홀 개관 1주년 페스티벌은 티켓 오픈 4분 만에 매진됐다. 앞서 1년 동안 부산콘서트홀에서는 임윤찬, 조성진, 양인모를 비롯한 세계적인 연주자와 유명 오케스트라가 잇따라 무대에 섰고, 관람객만 20만 명에 육박했다.18ad4637ed902.jpg

경남 창원에서 온 한 관객은 “이런 공연장이 있는 부산이 부럽다”라고 했다. 이러한 현실을 마주할 때마다 부산의 클래식 음악 인구는 정말 적었는가라는 자문을 다시 하게 된다. 결국 사람들은 문화가 없어서 소비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공간과 수준 높은 공연이 없었기 때문에 기회를 갖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라는 답에 도달하게 된다.

부산콘서트홀과 오페라하우스 건립과 개관 기념의 일환으로 7월 11일부터 이틀간 부산 북항 랜드마크 부지 특설무대에서 공연된 야외 오페라 ‘카르멘’을 보러 전국에서 운집한 관객들은 부산을 세계적 음악 축제로 유명한 스위스 루체른, 호수 위 야외오페라의 도시 오스트리아 브레겐츠, 고대 로마극장에서 오페라를 공연하는 프랑스 오랑주에 빗대‘부체른’과 ‘부레겐츠’, ‘부랑주’라고 부르면서 루체른의 열기와 브레겐츠의 수상무대, 오랑주의 시원한 바람을 제대로 실감했다.

2024년 6월 15일(토)에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시대악기 연주 오케스트라 ‘루브르의 음악가들’이 아트센터인천에서 내한 공연하였다. 연주가 끝나고 객석에서 터져 나온 박수를 악단의 리더인 마크 민코프키가 손을 들어 제재하더니 마이크를 잡고 한마디 하였다. “이런 어쿠스틱의 홀을 가지고 있는 걸 축하한다고….” 이는 클래식 음악이 여전히 사람들에게 필요하고, 지역의 자부심과 문화적 활력을 불러온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콘서트홀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음악의 본질과 미래를 담아내는 그릇이며 사람과 사람을 잇는 공간이다.

글 성용원(작곡가, 본지 상임평론가)
사진 제공: 클래식부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