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체테음악극연구소, 가에타노 도니제티 ‘비바 라 맘마’

모두가 오페라를 사랑하지만, 오페라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2026년 9월 11일(금) 오후 2시 부산금정문화회관 금빛누리홀
 
1. 오페라를 만드는 사람들의 오페라

 

오페라는 종합예술이기에 각 분야의 협업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제작자, 연출가, 작곡가, 대본 작가, 지휘자와 오케스트라, 성악가, 무대 제작진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이 하나의 작품을 위해 서로의 영역을 조정하고 합의해야 비로소 한 편의 오페라가 탄생한다. 그러나 모든 이해관계자에게는 저마다의 욕망이 있다. 욕망과 욕망은 충돌하고, 갈등한다. 통제되지 않는 욕망의 끝은 파국이다.

 

9월 11일 부산 금정문화회관 금빛누리홀에서 공연된 도니제티의 ‘비바 라 맘마’는 메타오페라이다. ‘메타’는 자기 성찰성, 자기 반영성을 의미한다. 오페라를 통해 오페라가 무엇인지, 오페라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고찰하는 것이 메타오페라다. 이러한 자기 반영성은 훗날 포스트모던 예술의 중요한 특성으로 나타나지만, 19세기의 도니제티는 시대를 앞서 ‘비바 라 맘마’를 통해 오페라 제작 과정을 한 편의 유쾌한 해프닝으로 써냈다.

 

‘남들처럼’은 절대로 하지 않는 루체테음악극연구소의 백현주 대표가 감독·제작하여, 덕택에 독보적인 오페라를 부산에서 볼 수 있었다. 독일 연출가 라헬 틸이 연출하고 이동신이 유나이티드 코리안 오케스트라를 지휘했다. 프리마돈나 역의 소프라노 구민영, 마마 아가타 역의 바리톤 이태영을 비롯해 한정현, 유기훈, 이명인, 김준엽, 이기백, 이은비 등이 출연하여 시공을 초월해 현존하는 오페라를 둘러싼 갖가지 욕망과 갈등을 관객에게 제시하였다.

 

‘비바 라 맘마’의 원제는 Le convenienze ed inconvenienze teatrali로, ‘극장의 관례와 불편함’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도니제티는 1827년 이 작품의 초기 형태인 Le convenienze teatrali를 발표했고 이후 작품을 개작했다. 제목의 ‘convenienze’는 당시 이탈리아 오페라계에서 프리마돈나와 테노르 등 가수의 서열에 따라 아리아의 수와 비중, 출연 순서 등을 결정하던 극장의 관례를 나타내는 ‘기표’이다.

 

오페라를 제작하는 사람들이 등장하는 오페라이고, 그들이 오페라를 만드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갈등 자체가 작품의 내용이 되는 메타오페라이다. 19세기 오페라 작곡가였던 도니제티의 자전적 오페라는 아니지만, 당시 오페라 극장의 한복판에서 수많은 작품을 만들어야 했던 작곡가가 자신을 둘러싼 극장 시스템을 풍자했다는 점에서 일종의 ‘직업적 자화상’이다. 벨칸토 오페라의 대가인 도니제티는 벨칸토 오페라의 관례를 벨칸토 음악으로 패러디하는 역설을 ‘비바 라 맘마’를 통해 실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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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무대 속의 무대, 욕망의 공간

 

무대 중앙에 채도가 높은 파란색의 커다란 의자가 있었다. ‘권위, 지위, 역할’을 상징하는 이 의자는 단순한 소품이 아니었다. 무대를 좌우로 분할하고 위와 아래의 높이를 만들어냈다. 이를 통해 여러 성악가가 서로 다른 행동과 노래를 동시에 펼칠 수 있도록 하는 일종의 작은 ‘무대 속 무대’가 만들어졌다. 특히 극 후반으로 갈수록 거의 모든 등장인물이 각자의 주장을 동시에 노래하는 장면에서 이 무대 세트는 빛을 발했다. 커튼의 사용 역시 효과적이었다. 극장이라면 당연히 감춰야 할 무대의 안과 밖을 오히려 노출하고, 관객에게 지금 보고 있는 것이 ‘오페라를 소재로 한 메타오페라’라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상기시켰다. 총 12개의 명도 차를 지닌 붉은색 조각 커튼을 통해 등장인물들의 전경화와 배경화를 구분시키고, 극 중 참여도를 조절했다. 의상에서는 붉은색이 강하게 부각되었고 갈색과 검은색이 이를 받쳤다. 높은 채도의 색채 대비는 인물들의 과장된 성격을 표현하는 동시에 그들 간의 충돌과 긴장을 부각시켰다.

 

3. 독백의 병렬은 합창도 오페라도 아니다
 

처음에는 하나의 공연을 준비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무대는 각자의 욕망이 충돌하는 공간으로 변한다. 극은 마에스트로가 악보를 나눠주고 작품을 설명하면서 시작한다. 아직까지는 정상적인 오페라 연습처럼 보인다. 그러나 곧 프리마돈나가 자신의 목소리를 자랑하고, 각각의 가수들이 자신의 음악을 연습하면서 균열이 시작된다.

 

프리마돈나 역의 구민영은 큰 성량 자체로 상대를 압도하기보다는 미성과 벨칸토 특유의 콜로라투라를 통해 인물의 성격을 살렸다. 유연하게 움직이는 목소리와 무대에 대한 몰입은 ‘나는 프리마돈나다’라는 인물의 자의식과 잘 맞아떨어졌다. 오케스트라는 이를 과도하게 덮지 않고 성악의 움직임을 받쳐주면서 벨칸토 특유의 경쾌한 흐름을 유지했다. 프리마돈나에게 중요한 것은 ‘우리의 오페라’가 아니라 ‘나의 노래’다. 그것은 다른 인물들도 마찬가지다. 루이지아와 테노르는 자신들이 원하는 내용과 이중창을 작곡가와 대본가에게 요구한다. 그러자 작품을 함께 만들어야 할 작곡가와 대본가마저 서로 다투기 시작한다. 대본가는 자신이 ‘주옥같은 대화’를 써낼 것이라며 자부심을 여과 없이 표출하고, 프리마돈나는 자신의 노래에 도취되어 있다. 반면 다른 인물들은 하품하며 지루해한다. 완벽한 ‘동상이몽’이다. 이 공연의 재미는 바로 이 동상이몽을 무대 위에서 끊임없이 증폭시키는 데 있었다. 함께 노래할수록 더욱 소통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등장인물 모두는 같은 오페라를 이야기하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오페라는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

 

합창단의 존재는 흥미롭다. 합창단원은 극 중에서 청중의 태도를 대변해준다는 점에서 메타오페라의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한다. 합창단원들은 프리마돈나를 숭배하고 기쁨과 행복, 환희에 대한 갈망을 노래한다. ‘영혼마저 취하게 하는 그 기쁨’으로서 오페라를 찬양한다.

오페라를 찬양하는 합창단의 노래가 울리는 동안 정작 오페라를 만드는 사람들은 서로 싸운다. 자신의 배역과 아리아, 지위만을 주장한다. 청중이 생각하는 ‘이상으로서의 오페라’와 현실의 오페라 제작 과정 사이에는 상당한 간극이 존재한다. 이 간극을 부각시키기 위해 합창단은 좀 더 활용할 여지가 있는 존재였다. 고대 그리스 비극의 합창단처럼 관람자이자 심판자, 서술자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이번 공연에서는 합창단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았는데, 이들을 무대 위의 ‘또 다른 관객’으로 조금 더 적극적으로 활용했다면 메타오페라의 성격이 더욱 부각될 수도 있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공연에서 더욱 흥미로웠던 것은 등장인물들이 동시에 노래하는 앙상블이었다. 극이 진행될수록 한 사람이 노래하고 다른 사람이 듣는 정상적인 대화의 구조가 무너진다. 각자가 자신의 요구와 불만을 동시에 쏟아낸다. 중앙의 큰 의자 위와 좌우에 등장인물들이 흩어지고, 서로 다른 생각과 가사를 한꺼번에 노래하면서 무대는 점점 혼란스러워진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음악은 전혀 흐트러지지 않는다. 음악적으로는 앙상블, 즉 소통을 추구하는 형식인데 극적으로 제시되는 것은 소통의 실패다. 바로 이 지점이 오늘 공연에서 도니제티의 음악과 연출이 가장 흥미롭게 만나는 순간이었다. 성악가들은 음악적으로는 도니제티의 의도대로 정확하게 함께 움직이는데, 그럴수록 극 중에서 연출되는 장면에서는 아무도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는다. 여러 목소리가 음악적으로 하나가 될수록 서로의 관계성은 더욱 철저하게 파괴된다. 오페라라는 장르가 여러 사람의 목소리를 하나의 음악으로 결합하는 예술, 혼의 교감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절묘한 역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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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엄마가 등장하자 오페라는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서서히 붕괴되면서도 그나마 불안하게 유지되던 극 중 질서를 완전히 무너뜨리는 인물이 루이지아의 엄마 아가사다. 바리톤 이태영이 맡은 아가사의 등장은 공연의 분위기를 크게 전환시켰다. 남성 바리톤이 극성스러운 어머니를 연기한다는 설정부터 희극적이지만, 웃음은 단순히 여장이라는 현상에만 머물지 않았다. 엄마는 강했다. 못하는 것이 없었다. 아가사는 루이지아가 독백과 동작으로 은근하게 드러내던 욕망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배출했다. 딸을 만나러 온 자신을 막는 사람에게 오히려 예의를 지키라며 몰아붙이고, 자기 딸이 가장 노래를 잘한다면서 다른 배우의 의자를 빼앗는다.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온 동네를 뒤집겠다’며 작곡가와 대본가를 협박하고 다른 가수들을 무시한다.

 

배역 발표 이후에는 갈등이 더욱 커졌다. 루이지아와 프리마돈나의 이중창 이야기가 나오자 프리마돈나는 자신보다 ‘급이 낮은’ 가수와 노래할 수 없다며 반발한다. 그러자 아가사는 프리마돈나를 향해 ‘마리아 칼라스, 테발디, 조수미 났네’라며 조롱한다. 이 장면에서 도니제티가 살던 19세기 오페라 제작의 난관이 시공을 초월하여 21세기에도 지속되고 있음을 관객은 인지한다. 19세기 이탈리아의 가수 서열과 프리마돈나 문화를 알지 못하는 관객도 칼라스, 테발디, 조수미라는 이름을 통해 그 풍자의 의미를 즉각 알아들을 수 있게 한 것이다.

 

등장인물들이 의자 위와 좌우를 가득 채우고 합창단까지 등장하면서 혼란은 절정에 달했다. 모든 사람이 한꺼번에 자기 입장을 노래한다. 그 순간 중앙의 거대한 의자는 더 이상 누군가 앉는 가구가 아니라 누가 무대의 중심을 차지할 것인가를 둘러싼 권력의 공간처럼 보이기도 했다.

 

카스트라토가 도망갔다는 소식은 이미 난장판인 제작 현장을 카타스트로프(catastrophe), 즉 파국으로 이끈다. 제작자는 공연이 망했다며 절망한다. 그러자 아가사가 자신이 대신 노래하겠다고 나선다. 모두 경악하지만 제작자는 기회를 주라고 명한다. 마에스트로는 아가사와 테노르의 이중창을 연습시키기 시작한다. 그러나 아가사는 악보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조성도 박자도 알지 못한다. 결국 테노르는 폭발하여 연습장을 떠난다. 다른 출연자와 합창단은 이를 지켜보고, 그 와중에도 마에스트로와 극작가는 ‘심오한 음악’이라며 자화자찬한다. 여기서 작품의 풍자는 한층 날카로워진다. 무대 위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결과와 그것을 만드는 사람들이 스스로 믿고 있는 예술적 가치 사이에 엄청난 간격이 생긴다.

 

테노르 대신 프로콜로가 추천되지만 그 역시 공연 자체보다 조건에 관심이 많다. 아내가 앉을 안락의자, 초대권, 개런티 등을 요구하고 계약서에는 아가사를 제외하라는 조건까지 내건다. 연출가가 연습을 강요하자 이번에는 모두가 컨디션이 좋지 않다며 반발한다. 재미있는 것은 조금 전까지 서로 싸우던 사람들이 연습을 요구하는 연출가라는 ‘공동의 적’이 생기자 갑자기 힘을 합친다는 점이다. 프로콜로 역시 자신의 노래에 사람들이 박수를 보내지 않는다며 불평하지만, 정작 노래를 해보라고 하면 노래하지 않고 포즈만 취한다. 아가사는 가사조차 모르고 지휘자가 알려주는 말도 제대로 따라 하지 못한다. 박자와 음정이 틀려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결국 무대에는 오페라를 만들기 위한 모든 사람이 있는데, 정작 오페라만 없다. 오페라를 만들려는 모든 구성원들은 노력할수록 오페라를 파괴한다.

 

결국 제작자는 파산을 선언한다. 등장인물들은 책임을 지는 대신 야반도주한다. 그렇게 한 편의 오페라를 만들기 위해 시작된 이야기는 오페라를 완성하지 못한 채 끝난다. 이 결말에서 《비바 라 맘마》의 메타오페라적 성격은 가장 분명해진다. 작곡가와 대본가는 자신의 작품을 자랑하고, 가수들은 자신의 목소리와 배역을 사랑한다. 아가사는 딸의 성공을 원하고, 프로콜로는 자신의 대우를 요구한다. 합창단은 오페라를 ‘영혼마저 취하게 하는 기쁨’이라고 찬양한다. 모두가 오페라를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아무도 오페라를 위해 자신의 욕망을 포기하거나 양보하지 않는다. 그 결과 오페라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들은 오페라도, 자신도 사랑하지 않았다. 오페라를 만들고 있는 자신의 욕망에만 집착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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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욕망과 집착의 결과물, 실패한 오페라가 완성한 오페라 '비바 라 맘마'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훗날 ‘낙소스의 아리아드네’와 ‘카프리치오’에서 메타오페라를 구성한 방식 및 내용과 비교하면 도니제티 메타오페라의 특징이 선명하게 파악된다. 슈트라우스가 비극과 희극, 고급예술과 대중예술, 음악과 언어의 관계를 질문하며 ‘오페라란 무엇인가’라는 본질과 관념으로 향한다면, 도니제티는 훨씬 현실적인 곳을 바라본다. ‘위대한 오페라를 실제로 만드는 사람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인가.’

 

루체테 극음악 연구소의 ‘비바 라 맘마’가 재미있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공연은 19세기 이탈리아 오페라계의 낡은 관행을 재현하는 데 머물지 않았다. 예술가의 자존심과 자아도취, 배역을 둘러싼 경쟁, 계약 조건, 제작진과 출연자의 갈등이라는 문제는 오늘날 공연 제작 현장에도 낯설지 않다. 무엇보다 오늘 공연에서 인상적으로 드러난 것은 ‘함께 노래하는 것’과 ‘함께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사실이었다. 등장인물들이 가장 완벽하게 음악적 앙상블을 이루는 순간, 그들은 가장 격렬하게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무대 위의 음악은 하나가 되는데 사람들은 끝없이 갈라졌다.

 

마지막 파산은 단순한 희극적 반전이 아니다. 오페라는 수많은 사람이 함께 만들어야 하는 공동예술이며, 그 공동체가 무너지는 순간 음악적 재능과 아름다운 목소리가 아무리 많아도 한 편의 오페라는 만들어질 수 없다는 역설적인 결론이다. 오페라를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는 오페라는 결국 오페라를 만들지 못한 채 끝났다. 그러나 바로 그 실패의 서사를 한 편의 성공적인 오페라 ‘비바 라 맘마’로 완성하여 관객에게 보여주었다. 극 중의 사람들은 끝내 오페라를 만들지 못했지만, 그들이 오페라를 만들지 못하는 과정은 역설적으로 한 편의 오페라가 되었다. 모두가 오페라를 사랑한다고 하지만, 모두가 자기 방식만의 오페라를 원했다. 그러나 아무도 자신의 욕망을 내려놓지 않았다. 그래서 오페라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바로 그 실패가, 오늘 무대에서는 한 편의 오페라가 되었다.

 

평 정해성(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