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의 꿈 &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캔버스를 깨우는 C장조의 날갯짓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1번의 첫 C장조 화음이 낭랑하게 공간에 울리는 순간, 검은 그랜드피아노 옆 벽에 걸려있던 그림 속에서 커다란 노란 나비 한 마리가 그림을 뚫고 나와 공간을 유영하기 시작했다. 모차르트 소나타의 청량하며 우아한 선율과 리듬에 맞춰 부드러운 날갯짓을 시작하더니 2악장 안단테에서는 천장에 매달린 크리스탈 샹들리에의 은은한 조명 빛을 타며 주변을 맴돈다. 그러다 3악장 알레그로에 접어드니, 늦은 오후 선선해진 초가을 풍광이 보이는 긴 창가 너머의 곶자왈 숲을 배경으로 2/4박자 리듬에 맞춰 경쾌하게 춤을 춘다. 마지막 엔딩 코드와 함께 나비는 다시 그림 속으로 사뿐히 들어간다.
이 나비그림을 처음 본 건 제자의 공연에 함께 참여한 배주현 작가의 공연장 로비 전시회에서였다. 공연에 참석하기 위해 로비로 들어선 순간, 100호가 넘는 엄청난 크기의 작품 하나가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점묘법으로 그라데이션 된 색색의 밝은 바탕의 캔버스 위를 날고 있는 노란 나비들. 저 순수한 노란빛으로 반짝이는, 생기로 가득한 나비들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외쳤다. “와, 모차르트다!”. 정말 그렇다. 그림을 보는 내내 머릿속을 가득 채운 건 모차르트의 음악이었다. 그가 평생에 걸쳐 남긴 18곡의 피아노 소나타들이 순식간에 내 머릿속을 울리며 흐르기 시작했다.
폭우 끝에 찾아온 달콤한 한 방울, 모차르트
오랫동안 치열하게 투쟁하듯 살아왔다. 그러다 인생의 어느 지점, 문득 삶에서 나를 괴롭히던 것들이 하나씩 사라지기 시작한다고 느낀 순간이 있었다. 거친 폭우를 헤쳐 온 인간에게 신이 주는 선물인 양, 달달한 무언가가 내 삶에 한 방울 툭 떨어지며 처음으로 편안한 감정을 느꼈다. 그 순간 미치게 좋아지기 시작한 음악이 있다. 바로 모차르트, 그의 피아노 소나타다.
한 번도 상처입지 않은 아이의 시선으로 악보를 본다. 지칠 줄 모르는 호기심과 장난기 가득한 표정을 하고, ‘어떻게 하면 음악이 재밌어질까’ 고민하던 아이. 머릿속에서 마구 튀어 나오는 음들의 향연에 어쩔 줄 몰라 하며 들떠하는 아이였던 모차르트의 모습이 선연히 그려진다.
그의 음악은 자연의 규칙을 닮았다. 공기를 가르며 날아오르는 저 나비의 날개짓, 흰 거품을 일으키며 밀려오는 파도의 움직임, 작은 바람에 미세하게 떠는 나뭇잎들... 자연의 움직임은 늘 규칙적이지만 결코 부자연스럽지 않다. 그 규칙성 안에 내포되어 있는 것은 자연스러움과 그 안에서 시시각각 이루어지는 즉흥적인 변모다. 이 ‘자연스러움’과 ‘즉흥성’이라는 요소야말로 모차르트 음악이 갖는 최고의 매력일 것이다. 
건반 위로 흐르는 가사 없는 아리아
그의 음악적 본질에 닿기 위해 우리는 악보에서 무엇을 바라봐야 하는가. 바로 음악의 ‘요소’들이다. 박자와 리듬, 음표와 쉼표의 길이, 스타카토의 질감, 톤, 프레이즈 같은 본질적인 요소들 말이다. 어떤 지점에 이르면 그의 소나타는 한 편의 오페라 음악처럼 다가온다. 발이 땅에 닿지 않는 곳에 서 있는 듯한 천상의 선율, 너무 아름다워 슬프기까지 한 그의 아리아. 지금 이 순간, 손끝으로 그 아리아를 불러본다. 기계적인 글리산도가 아니라 숨을 담은 포르타멘토로, 단단한 기악적 스타카토가 아니라 유연한 성악적 스타카토로, 노래하는 트릴과 장식음으로, 그리고 기악적 아르페지오를 넘어 성악적 멜리스마의 느낌으로 연주해야 비로소 모차르트가 살아난다.
가끔 위대한 작곡가들의 작품을 대하다 보면 ‘진정 머릿속에 이 악기만을 염두에 두고 쓴 걸까’ 의구심이 드는 순간이 있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를 다룰 때, 그의 본능 속에 박혀있는 건 건반이 아니라 거대한 관현악 사운드가 아닐까 생각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다만 쇼팽만큼은 예외다. 쇼팽은 유일하게 피아노곡에서 오직 피아노만을 느끼게 한다. 그의 머릿속엔 온통 피아노뿐이기 때문이다. 피아노의 순수한 영혼, 피아노만을 사랑한 작곡가. 그래서 우리는 그를 ‘피아노의 시인’이라 부르는 것이리라. 그렇다면 모차르트는 어떠한가? 그의 소나타를 치다 보면 언제나 모차르트의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는 건 오직 ‘노래’ 그 자체인 듯하다.
소나타 K. 570 2악장 아다지오를 연주하기 위해 건반으로 손을 들어올렸다. 순간 머릿속에 같은 E-flat 장조의 노래, 오페라 <<마술피리>> 중 타미노 왕자의 아리아 <Dies Bildnis ist bezaubernd schön (얼마나 아름다운 초상화인가)>의 선율이 스치고 지나갔다. 첫눈에 반한 설렘으로 가득 찬 그 순수한 숨결을 손끝에 안고, 한 편의 아리아를 부르듯 노래하기 시작했다. 흑백의 건반 위로 흐르는 모차르트의 가사 없는 아리아!
나비가 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
애벌레가 나비가 될 확률은 단 1%에 불과하다고 한다. 나비가 되기 위해 애벌레는 자신의 몸에서 실을 뽑아내어 고치를 짓는다. 그리고 그 좁고 어두운 속에서 지난한 시간을 보내야 한다. 고치를 찢고 나올 때까지 그 존재가 어떤 날개를 달고 세상에 나올지 아무도 모른다.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모하기 위해 세포분열을 하는 과정에서, 애벌레는 자신이 완전히 액체 상태로 녹아내리는 과정을 겪는다. 즉, 자기를 온전히 버리는 것이다. 죽어서 다시 태어나는 격이다. 이 모든 해체의 고통을 견뎌낼 용기를 가진 애벌레만이, 비로소 나비의 날개를 가질 자격을 얻는다.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전곡연주 첫 번째 시리즈를 준비하며 배주현 작가의 나비 그림 외에 나에게 또 다른 영감을 준 것은 트리나 파올러스의 소설 <꽃들에게 희망을> 이다. 우리의 삶도 이 책에 나오는 애벌레의 여정과 참 많이 닮았다. 삶의 사건은 늘 인간의 작은 호기심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현실과 투쟁하며, 누군가와의 만남을 통해 서사를 이어간다. 사랑과 권태, 끊을 수 없는 인간적 욕망, 그리고 방황과 고독이 삶을 요동치게 만들지만, 결국 선택과 믿음, 다시 이어지는 도전, 인내와 기다림을 통해 마침내 변화된 삶이 서사를 완결시킨다. 한 사람의 용기가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고, 그 희망이 수많은 새로운 생명을 낳는다, 그 생명들이 또다시 새로운 생명을 낳는 아름다움의 역사는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되풀이되고 있다.
‘터키행진곡’으로 유명한 소나타 K. 331, A장조의 선율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벽에 걸린 그림 속 한 무리의 나비들이 다시 캔버스를 뚫고 날아올랐다. 바야흐로 나비의 군무다. 고독하게 꿈을 꾸던 애벌레들이 이토록 눈부신 날개를 달고 허공을 우아하게 가르며 비상한다. 그저 보잘것없는 애벌레였던 시절, 그렇게 열망하며 남을 짓밟으면서까지 올라가고 싶어 했던 저 구름기둥의 끝을, 이제는 힘들이지 않고 우아한 날개짓만으로 사뿐히 올라선다. 삶의 경이로운 아이러니다. 그렇다, 나비가 되기 위해 우리에게 진정 필요했던 것은 꿈과 인내, 그리고 묵묵히 견뎌내는 시간이었다.
삶에서 견뎌낸 모든 애환을 이토록 밝고 아름다운 선율 속에 녹여낸 모차르트의 음악. 숭고한 아름다움과 천진난만한 유머로 가득한 음악. 가장 단순한 음표로 가장 깊은 진실을 전하는 그의 음악이 지닌 매력에, 수백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우리는 변치 않는 감동을 마주한다. 모두가 오직 ‘위’만 바라보며 치열하게 전쟁하듯 살아가는 세상이지만, 우리 역시 자신만의 고치를 지으며 인내하는 시간을 보내다보면 어느 순간 내 안에 숨겨진 아름다운 날개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우리 안에 잠자고 있던 찬란한 날개를 펴고 나비처럼 날아오르리라. 모차르트의 음악처럼, 나비의 꿈처럼 말이다.
글 김현아(피아니스트, 칼럼니스트)
나비의 꿈 &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캔버스를 깨우는 C장조의 날갯짓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1번의 첫 C장조 화음이 낭랑하게 공간에 울리는 순간, 검은 그랜드피아노 옆 벽에 걸려있던 그림 속에서 커다란 노란 나비 한 마리가 그림을 뚫고 나와 공간을 유영하기 시작했다. 모차르트 소나타의 청량하며 우아한 선율과 리듬에 맞춰 부드러운 날갯짓을 시작하더니 2악장 안단테에서는 천장에 매달린 크리스탈 샹들리에의 은은한 조명 빛을 타며 주변을 맴돈다. 그러다 3악장 알레그로에 접어드니, 늦은 오후 선선해진 초가을 풍광이 보이는 긴 창가 너머의 곶자왈 숲을 배경으로 2/4박자 리듬에 맞춰 경쾌하게 춤을 춘다. 마지막 엔딩 코드와 함께 나비는 다시 그림 속으로 사뿐히 들어간다.
이 나비그림을 처음 본 건 제자의 공연에 함께 참여한 배주현 작가의 공연장 로비 전시회에서였다. 공연에 참석하기 위해 로비로 들어선 순간, 100호가 넘는 엄청난 크기의 작품 하나가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점묘법으로 그라데이션 된 색색의 밝은 바탕의 캔버스 위를 날고 있는 노란 나비들. 저 순수한 노란빛으로 반짝이는, 생기로 가득한 나비들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외쳤다. “와, 모차르트다!”. 정말 그렇다. 그림을 보는 내내 머릿속을 가득 채운 건 모차르트의 음악이었다. 그가 평생에 걸쳐 남긴 18곡의 피아노 소나타들이 순식간에 내 머릿속을 울리며 흐르기 시작했다.
폭우 끝에 찾아온 달콤한 한 방울, 모차르트
오랫동안 치열하게 투쟁하듯 살아왔다. 그러다 인생의 어느 지점, 문득 삶에서 나를 괴롭히던 것들이 하나씩 사라지기 시작한다고 느낀 순간이 있었다. 거친 폭우를 헤쳐 온 인간에게 신이 주는 선물인 양, 달달한 무언가가 내 삶에 한 방울 툭 떨어지며 처음으로 편안한 감정을 느꼈다. 그 순간 미치게 좋아지기 시작한 음악이 있다. 바로 모차르트, 그의 피아노 소나타다.
한 번도 상처입지 않은 아이의 시선으로 악보를 본다. 지칠 줄 모르는 호기심과 장난기 가득한 표정을 하고, ‘어떻게 하면 음악이 재밌어질까’ 고민하던 아이. 머릿속에서 마구 튀어 나오는 음들의 향연에 어쩔 줄 몰라 하며 들떠하는 아이였던 모차르트의 모습이 선연히 그려진다.
그의 음악은 자연의 규칙을 닮았다. 공기를 가르며 날아오르는 저 나비의 날개짓, 흰 거품을 일으키며 밀려오는 파도의 움직임, 작은 바람에 미세하게 떠는 나뭇잎들... 자연의 움직임은 늘 규칙적이지만 결코 부자연스럽지 않다. 그 규칙성 안에 내포되어 있는 것은 자연스러움과 그 안에서 시시각각 이루어지는 즉흥적인 변모다. 이 ‘자연스러움’과 ‘즉흥성’이라는 요소야말로 모차르트 음악이 갖는 최고의 매력일 것이다.
건반 위로 흐르는 가사 없는 아리아
그의 음악적 본질에 닿기 위해 우리는 악보에서 무엇을 바라봐야 하는가. 바로 음악의 ‘요소’들이다. 박자와 리듬, 음표와 쉼표의 길이, 스타카토의 질감, 톤, 프레이즈 같은 본질적인 요소들 말이다. 어떤 지점에 이르면 그의 소나타는 한 편의 오페라 음악처럼 다가온다. 발이 땅에 닿지 않는 곳에 서 있는 듯한 천상의 선율, 너무 아름다워 슬프기까지 한 그의 아리아. 지금 이 순간, 손끝으로 그 아리아를 불러본다. 기계적인 글리산도가 아니라 숨을 담은 포르타멘토로, 단단한 기악적 스타카토가 아니라 유연한 성악적 스타카토로, 노래하는 트릴과 장식음으로, 그리고 기악적 아르페지오를 넘어 성악적 멜리스마의 느낌으로 연주해야 비로소 모차르트가 살아난다.
가끔 위대한 작곡가들의 작품을 대하다 보면 ‘진정 머릿속에 이 악기만을 염두에 두고 쓴 걸까’ 의구심이 드는 순간이 있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를 다룰 때, 그의 본능 속에 박혀있는 건 건반이 아니라 거대한 관현악 사운드가 아닐까 생각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다만 쇼팽만큼은 예외다. 쇼팽은 유일하게 피아노곡에서 오직 피아노만을 느끼게 한다. 그의 머릿속엔 온통 피아노뿐이기 때문이다. 피아노의 순수한 영혼, 피아노만을 사랑한 작곡가. 그래서 우리는 그를 ‘피아노의 시인’이라 부르는 것이리라. 그렇다면 모차르트는 어떠한가? 그의 소나타를 치다 보면 언제나 모차르트의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는 건 오직 ‘노래’ 그 자체인 듯하다.
소나타 K. 570 2악장 아다지오를 연주하기 위해 건반으로 손을 들어올렸다. 순간 머릿속에 같은 E-flat 장조의 노래, 오페라 <<마술피리>> 중 타미노 왕자의 아리아 <Dies Bildnis ist bezaubernd schön (얼마나 아름다운 초상화인가)>의 선율이 스치고 지나갔다. 첫눈에 반한 설렘으로 가득 찬 그 순수한 숨결을 손끝에 안고, 한 편의 아리아를 부르듯 노래하기 시작했다. 흑백의 건반 위로 흐르는 모차르트의 가사 없는 아리아!
나비가 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
애벌레가 나비가 될 확률은 단 1%에 불과하다고 한다. 나비가 되기 위해 애벌레는 자신의 몸에서 실을 뽑아내어 고치를 짓는다. 그리고 그 좁고 어두운 속에서 지난한 시간을 보내야 한다. 고치를 찢고 나올 때까지 그 존재가 어떤 날개를 달고 세상에 나올지 아무도 모른다.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모하기 위해 세포분열을 하는 과정에서, 애벌레는 자신이 완전히 액체 상태로 녹아내리는 과정을 겪는다. 즉, 자기를 온전히 버리는 것이다. 죽어서 다시 태어나는 격이다. 이 모든 해체의 고통을 견뎌낼 용기를 가진 애벌레만이, 비로소 나비의 날개를 가질 자격을 얻는다.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전곡연주 첫 번째 시리즈를 준비하며 배주현 작가의 나비 그림 외에 나에게 또 다른 영감을 준 것은 트리나 파올러스의 소설 <꽃들에게 희망을> 이다. 우리의 삶도 이 책에 나오는 애벌레의 여정과 참 많이 닮았다. 삶의 사건은 늘 인간의 작은 호기심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현실과 투쟁하며, 누군가와의 만남을 통해 서사를 이어간다. 사랑과 권태, 끊을 수 없는 인간적 욕망, 그리고 방황과 고독이 삶을 요동치게 만들지만, 결국 선택과 믿음, 다시 이어지는 도전, 인내와 기다림을 통해 마침내 변화된 삶이 서사를 완결시킨다. 한 사람의 용기가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고, 그 희망이 수많은 새로운 생명을 낳는다, 그 생명들이 또다시 새로운 생명을 낳는 아름다움의 역사는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되풀이되고 있다.
‘터키행진곡’으로 유명한 소나타 K. 331, A장조의 선율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벽에 걸린 그림 속 한 무리의 나비들이 다시 캔버스를 뚫고 날아올랐다. 바야흐로 나비의 군무다. 고독하게 꿈을 꾸던 애벌레들이 이토록 눈부신 날개를 달고 허공을 우아하게 가르며 비상한다. 그저 보잘것없는 애벌레였던 시절, 그렇게 열망하며 남을 짓밟으면서까지 올라가고 싶어 했던 저 구름기둥의 끝을, 이제는 힘들이지 않고 우아한 날개짓만으로 사뿐히 올라선다. 삶의 경이로운 아이러니다. 그렇다, 나비가 되기 위해 우리에게 진정 필요했던 것은 꿈과 인내, 그리고 묵묵히 견뎌내는 시간이었다.
삶에서 견뎌낸 모든 애환을 이토록 밝고 아름다운 선율 속에 녹여낸 모차르트의 음악. 숭고한 아름다움과 천진난만한 유머로 가득한 음악. 가장 단순한 음표로 가장 깊은 진실을 전하는 그의 음악이 지닌 매력에, 수백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우리는 변치 않는 감동을 마주한다. 모두가 오직 ‘위’만 바라보며 치열하게 전쟁하듯 살아가는 세상이지만, 우리 역시 자신만의 고치를 지으며 인내하는 시간을 보내다보면 어느 순간 내 안에 숨겨진 아름다운 날개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우리 안에 잠자고 있던 찬란한 날개를 펴고 나비처럼 날아오르리라. 모차르트의 음악처럼, 나비의 꿈처럼 말이다.
글 김현아(피아니스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