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콘서트가 함께하는 이색적인 공연 - '연애의 정석'이 주는 영향

세대를 잇는 필름콘서트와 음악치료의 새로운 가능성


"부모님은 어떤 사랑을 했을까?"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런 질문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부모님을 현재의 모습으로만 인식한다. 가족을 위해 일하고, 자녀를 키우고, 삶의 무게를 견뎌온 현재의 모습은 익숙하지만, 그분들에게도 설레는 마음으로 누군가를 기다리던 청춘이 있었다는 사실은 굳이 생각해내지 못한다.

부모님에게도 첫사랑이 있었고, 좋아하던 배우가 있었으며,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음악다방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으며 미래를 꿈꾸던 시간이 있었다. 그 시절의 기억은 시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한 장의 흑백사진과 한 소절의 음악만으로도 그 기억은 놀라울 만큼 선명하게 되살아난다.

 

지난 7월 8일 부천 솔안아트홀에서 펼쳐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초청작 영상스토리 필름콘서트 ‘연애의 정석’은 바로 이러한 기억을 무대 위에서 다시 만나는 시간이었다. 이번 공연을 기획하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좋은 음악을 들려주는 공연'이 아니었다. 부모 세대에게는 자신의 청춘을 다시 만나는 시간이 되고, 자녀 세대에게는 부모님의 삶을 이해하는 시간이 되는 것이 더 큰 목표였다.

공연에서는 1950~60년대 한국 영화의 명장면들이 스크린 위에 펼쳐졌다. 신성일과 엄앵란, 최은희, 구봉서, 어린 안성기의 모습은 단순한 영화 장면이 아니라 당시를 살아간 사람들의 삶과 감정, 그리고 시대의 공기를 담고 있었다. 이어 성악가들의 라이브 공연은 영화 속 감정을 현재의 시간으로 가져와 관객들에게 새로운 울림을 선사했다.

 

이러한 경험은 음악치료에서 말하는 ‘회상치료’와 깊은 관련이 있다. 회상치료는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사진, 음악, 영상 등을 활용하여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긍정적인 정서를 회복하도록 돕는 치료적 접근이다. 특히 노년기에는 오래된 음악 한 곡이 단순한 감상을 넘어 삶의 한 장면을 다시 불러오는 강력한 매개체가 된다. 젊은 시절 즐겨 들었던 음악은 당시의 감정, 사람, 공간, 냄새, 계절까지 함께 떠올리게 하며 잊고 있던 기억을 현재와 연결한다.

음악은 기억을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에 감정을 입힌다. 같은 영화를 보더라도 기억나는 것은 장면보다 음악인 경우도 많다. 음악은 인간의 정서와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특정 선율이나 리듬은 수십 년이 지나도 당시의 감정을 생생하게 불러낸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음악은 치매 예방 프로그램이나 노인 음악치료, 우울감 완화 프로그램에서도 꾸준히 활용되고 있다.

 

이번 필름콘서트 역시 공연이라는 형식을 빌렸지만, 그 안에는 자연스러운 회상의 요소가 담겨 있었다. 관객들은 영화를 보며 자신의 젊은 시절을 떠올렸고, 음악을 들으며 잊고 있던 감정을 다시 만났다. 누군가는 배우의 얼굴에서 자신의 첫사랑을 기억했고, 누군가는 한 곡의 노래에서 신혼 시절을 떠올렸다. 공연이 끝난 뒤 ‘오랜만에 옛날 생각이 났다’, ‘부모님과 함께 다시 보고 싶다’는 관객들의 이야기는 이러한 경험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이번 공연이 가진 의미는 개인의 추억을 되살리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더 중요한 가치는 세대 간 공감이다. 오늘날 가족들은 같은 공간에 있어도 서로 다른 콘텐츠를 소비한다. 부모는 TV를 보고, 자녀는 스마트폰을 본다. 같은 집에 살면서도 함께 웃고 함께 울 수 있는 문화적 경험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영화와 음악은 이러한 세대의 간극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매개체가 될 수 있다. 부모는 영화를 통해 자신의 청춘을 기억하고, 자녀는 그 영화를 통해 부모님의 젊은 시절을 상상하게 된다. 그리고 그 감정을 음악이 이어준다. 결국 공연은 과거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삶을 이해하는 과정이 된다.

이것은 공감적 소통이라고 말한다. 음악은 언어보다 먼저 감정을 전달하며, 서로 다른 세대가 같은 음악을 듣는 경험은 대화를 시작하게 만드는 가장 자연스러운 계기가 된다. f64af84ca67c6.png

부모님들에게도 사랑의 시절이 있었기에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하면, 사랑의 감성이 되살아나 정신적인 치유에 도움이 된다. 


이러한 공연이 앞으로 가족 단위 문화예술 프로그램으로 더욱 확대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우리 사회에서 문화예술은 단순한 여가 활동을 넘어 심리적 건강을 유지하는 중요한 자원이 될 수 있다. 의료와 복지가 신체를 돌본다면 예술은 마음을 돌본다. 음악 한 곡은 약이 될 수는 없지만, 삶을 다시 사랑하게 만드는 힘은 충분히 가지고 있다.

최근 생성형 AI는 음악 창작의 새로운 시대를 열고 있다. 누구나 몇 줄의 문장만으로 음악을 만들 수 있고, 원하는 분위기의 곡을 즉시 생성할 수 있다. 이는 음악교육과 창작 환경을 크게 변화시키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기술이 발전하더라도 사람의 기억과 감정을 대신 만들어 줄 수는 없다. AI는 음악을 생성할 수 있지만, 삶을 기억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그래서 미래의 공연예술은 기술을 활용하면서도 인간의 감정과 경험을 더욱 깊이 담아내야 한다. AI가 음악을 만드는 시대일수록 우리는 음악을 왜 듣는지, 왜 함께 노래하는지, 왜 공연장에서 같은 감동을 나누는지를 더욱 고민해야 한다.


이번 필름콘서트는 영화를 상영하는 공연이 아니었다. 부모님의 청춘을 다시 만나는 시간이었고, 가족의 기억을 이어주는 시간이었으며, 세대가 함께 웃고 공감하는 치유의 무대였다.

음악은 시간을 거슬러 과거를 현재로 데려오는 가장 아름다운 예술이다. 영화는 그 시간을 눈앞에 펼쳐 보이고, 음악은 그 안에 담긴 감정을 다시 살아나게 한다.

앞으로도 이러한 필름콘서트가 단순한 문화행사를 넘어 사람들의 기억을 회복하고, 가족 간의 대화를 이끌어내며, 세대와 세대를 연결하는 문화예술 콘텐츠로 발전하기를 기대한다. 음악감독으로서 앞으로도 음악이 사람을 치유하고, 영화를 통해 삶을 이해하며, 예술을 통해 세대가 서로를 공감할 수 있는 무대를 계속 만들어가고자 한다. 그것이 음악이 가진 가장 본질적인 가치이며, 예술이 우리 사회에 전할 수 있는 가장 따뜻한 선물이기 때문이다.

 

글 한숙현(음악감독, 경기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