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19일(금)~21일(일) 마포아트센터 아트홀맥
원작의 향기를 넘어선 한국형 오페라
로제로 레온까발로의 오페라 ‘팔리아치’는 물론 원전 작품을 봐도 재미가 넘친다. 그러나 원작을 잊어버려야 장수동의 오페라 ‘광대들’은 더 재미있다. 의도적이지만 ‘광대들’은 음악적 흐름 외에는 원작의 향기를 느낄 수 없도록 곳곳에 한국적 장치로 완전히 탈바꿈해놓았다.
삐에로들의 분장, 완벽한 성악 발성, 분명 적은 비용을 들였을 텐데 그랜드오페라 효과를 연출한 합창단, 14명의 연주라고 하기엔 그 울림이 중량급인 오케스트라 사운드, 오페라 가수들이 극의 흐름을 주도하도록 영상효과를 극도로 줄인 점, 우리의 토속적인 설화 처용설화를 응용해 삐에로의 광대극 ‘신라의 달밤’을 전개시킨 점 등 후킹포인트가 한두 군데가 아니다.
오케스트라 원곡을 해하지 않으면서도 귀에 쏙쏙 들어오는 광대들을 보고 번안오페라를 향한 장수동 감독의 집념의 결실을 보는 것 같아, 오페라 이전에 ‘인간 장수동’에 깊은 감동, 그의 신념을 느낄 수 있었다.
“오페라가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구나.”
공연이 끝나고 출구를 향한 느릿느릿한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귀엣말 소리가 들렸다. 어느 중년 여성이 딸에게 감탄과 함께 귀띔하는 소리다.
광대의 가면 뒤에 숨은 인간의 비극
‘광대들’은 토니오의 역할을 한 용만의 프롤로그에서부터 시선을 끌었다. 신화나 영웅이 아니라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 막장이라 할 수 있는 광대들의 평범하지만, 비극적인 이야기를 다룬다는 선언에서 영웅이나 고관대작들의 뜬구름 잡는 이야기 따위가 아님을 분명히 선언하기에 서사에 대한 궁금증을 더욱 불러일으켰다. 팔리아치를 아는 이들도 우리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갈지 무척 기대하게 하는 예언이었다.
여기서 꼭 짚고 넘어가야겠다. 다리가 온전치 못한 장애인 광대 '용만'으로 등장한 장철의 연기에는 극 중 광대가 아니라 그동안 오페라 무대를 지켜온 오랜 구력과 묵직한 울림을 느끼게 했다는 점이다. 그야말로 평생 삐에로로 살아온 진짜 광대 같다고나 할까?
이날 무대에서 가장 강렬한 인상을 준 주인공은 애란 ‘강효진’과 애란의 날개를 얽어맨 단장 태석의 역을 맡은 '이규철'이다. 소극장에서 탄탄한 실력을 쌓고 그랜드무대로 초청받곤 하는 강효진의 노래와 연기는 명품이었다. 애란의 외도에 대한 질투로 분노한 나머지 ‘연기와 현실’의 벽을 찢어버리고 마침내 아내 애란을 살해한 태석의 광기에서는 청중들도 '신라의 달밤' 무대 위 합창단 단원들과 나란히 앉아있는 것 같은 현장감을 주었다. 작위적인 연출이 아니라 청중마저 광대의 무대에 투입시킨 듯한 생생한 이머시브였다.
애란은 테너 조철희가 분한 광대 ‘모모’의 유혹과 그 달콤한 유혹을 받아들이는 듯한 태도를 취한다. 그러나 연극이 끝나면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재준과 함께 이 지독한 감시와 고통의 굴레에서 벗어나고픈 희망과 욕망 사이에서 흔들리는 애란, 그 모습을 지켜봐야만 하는 용만, 그리고 애란이 진정 사랑하는 재준(장성일 분) 역시 광기의 현장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흐름이 계속된다.
이렇게 가슴 졸이는 오페라 '광대들'의 전개를 보면서 19세기나 21세기나 인간의 기본 성정과 죄악과 위악, 위선은 단 1도 변함이 없다는 걸 누구나 체감케 한다.

번안오페라의 이정표를 세우다
이번 공연은 어쩌면 번안오페라의 새로운 장을 여는 공연으로 기록될 것 같다. 그만큼 장수동 감독 일생에서 가장 성공적인 번안오페라라고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미 서울라보엠, 도시의 삐에로, 섬진강 나루 등 단순한 번역이 아니라 껍데기만 그들의 음악적 어법을 따랐을 뿐, 한국의 시대적 공간과 한국 어법으로 대체해 우리 이야기를 담은 기존의 번안오페라가 무대화되었다. 그러나 이들 번안오페라는 흥미와 재미보다는 철학적 의미를 강조한 극적 프로세스 때문에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이미지를 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광대들'은 우리 오페라가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는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해주는 듯했다.
우리에게 번안오페라는 생소하지만 이미 유럽과 영미 등지에서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독일이라면 독일어로, 영미권이라면 영어로 공연하는 게 당연하다고 믿고 있으며 실제 원작보다 언어와 무대, 시대적 배경을 등을 현실적으로 바꿔서 공연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그것이 그들의 생존법이기도 하다.
국내에도 20여 년 전 그럼 현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성악과 학생들도 원전오페라를 우리말로 번역해서 곧잘 연습하고 공연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해외 활동 성악가들이 증가하고 그들이 주요 무대를 장악하면서 오로지 원전만 고집하는 트렌드가 형성되었다.
이번 공연이 던져준 충격을 하나 더 언급한다면 모국어의 재조명이다. 언어학에 기초한 것인지는 몰라도 이미 이태리 언어에 익숙한 성악가들도 우리말을 쉽게 발음할 수 있도록 성악가들의 의견을 수렴한 뒤, 종성이나 폐음절 가사를 받침이 없는 다른 단어나 개음절로 바꾸었다는 사실이다. 의미에 따른 분절도 유의미한 묶음 단위로 바꾸었다. '아버지 가방에'라는 엉뚱한 프레이즈를 합리적으로 바꿨다는 뜻이다. 오페라는 고집스러운 시인들의 언어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다는 걸 이번 오페라는 보여준 셈이다.
'광대들'이 마포아트센터에서의 실험적 공연으로 끝날 것 같지 않다. 모쪼록 전국 공연장에서 두루두루 초청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막간극조차도 눈을 뗄 수 없는 묘기에 찬사가 마르지 않은 공연이 바로 광대들이다.
評 김종섭
2026년 6월 19일(금)~21일(일) 마포아트센터 아트홀맥
원작의 향기를 넘어선 한국형 오페라
로제로 레온까발로의 오페라 ‘팔리아치’는 물론 원전 작품을 봐도 재미가 넘친다. 그러나 원작을 잊어버려야 장수동의 오페라 ‘광대들’은 더 재미있다. 의도적이지만 ‘광대들’은 음악적 흐름 외에는 원작의 향기를 느낄 수 없도록 곳곳에 한국적 장치로 완전히 탈바꿈해놓았다.
삐에로들의 분장, 완벽한 성악 발성, 분명 적은 비용을 들였을 텐데 그랜드오페라 효과를 연출한 합창단, 14명의 연주라고 하기엔 그 울림이 중량급인 오케스트라 사운드, 오페라 가수들이 극의 흐름을 주도하도록 영상효과를 극도로 줄인 점, 우리의 토속적인 설화 처용설화를 응용해 삐에로의 광대극 ‘신라의 달밤’을 전개시킨 점 등 후킹포인트가 한두 군데가 아니다.
오케스트라 원곡을 해하지 않으면서도 귀에 쏙쏙 들어오는 광대들을 보고 번안오페라를 향한 장수동 감독의 집념의 결실을 보는 것 같아, 오페라 이전에 ‘인간 장수동’에 깊은 감동, 그의 신념을 느낄 수 있었다.
“오페라가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구나.”
공연이 끝나고 출구를 향한 느릿느릿한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귀엣말 소리가 들렸다. 어느 중년 여성이 딸에게 감탄과 함께 귀띔하는 소리다.
광대의 가면 뒤에 숨은 인간의 비극
‘광대들’은 토니오의 역할을 한 용만의 프롤로그에서부터 시선을 끌었다. 신화나 영웅이 아니라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 막장이라 할 수 있는 광대들의 평범하지만, 비극적인 이야기를 다룬다는 선언에서 영웅이나 고관대작들의 뜬구름 잡는 이야기 따위가 아님을 분명히 선언하기에 서사에 대한 궁금증을 더욱 불러일으켰다. 팔리아치를 아는 이들도 우리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갈지 무척 기대하게 하는 예언이었다.
여기서 꼭 짚고 넘어가야겠다. 다리가 온전치 못한 장애인 광대 '용만'으로 등장한 장철의 연기에는 극 중 광대가 아니라 그동안 오페라 무대를 지켜온 오랜 구력과 묵직한 울림을 느끼게 했다는 점이다. 그야말로 평생 삐에로로 살아온 진짜 광대 같다고나 할까?
이날 무대에서 가장 강렬한 인상을 준 주인공은 애란 ‘강효진’과 애란의 날개를 얽어맨 단장 태석의 역을 맡은 '이규철'이다. 소극장에서 탄탄한 실력을 쌓고 그랜드무대로 초청받곤 하는 강효진의 노래와 연기는 명품이었다. 애란의 외도에 대한 질투로 분노한 나머지 ‘연기와 현실’의 벽을 찢어버리고 마침내 아내 애란을 살해한 태석의 광기에서는 청중들도 '신라의 달밤' 무대 위 합창단 단원들과 나란히 앉아있는 것 같은 현장감을 주었다. 작위적인 연출이 아니라 청중마저 광대의 무대에 투입시킨 듯한 생생한 이머시브였다.
애란은 테너 조철희가 분한 광대 ‘모모’의 유혹과 그 달콤한 유혹을 받아들이는 듯한 태도를 취한다. 그러나 연극이 끝나면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재준과 함께 이 지독한 감시와 고통의 굴레에서 벗어나고픈 희망과 욕망 사이에서 흔들리는 애란, 그 모습을 지켜봐야만 하는 용만, 그리고 애란이 진정 사랑하는 재준(장성일 분) 역시 광기의 현장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흐름이 계속된다.
이렇게 가슴 졸이는 오페라 '광대들'의 전개를 보면서 19세기나 21세기나 인간의 기본 성정과 죄악과 위악, 위선은 단 1도 변함이 없다는 걸 누구나 체감케 한다.
번안오페라의 이정표를 세우다
이번 공연은 어쩌면 번안오페라의 새로운 장을 여는 공연으로 기록될 것 같다. 그만큼 장수동 감독 일생에서 가장 성공적인 번안오페라라고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미 서울라보엠, 도시의 삐에로, 섬진강 나루 등 단순한 번역이 아니라 껍데기만 그들의 음악적 어법을 따랐을 뿐, 한국의 시대적 공간과 한국 어법으로 대체해 우리 이야기를 담은 기존의 번안오페라가 무대화되었다. 그러나 이들 번안오페라는 흥미와 재미보다는 철학적 의미를 강조한 극적 프로세스 때문에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이미지를 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광대들'은 우리 오페라가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는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해주는 듯했다.
우리에게 번안오페라는 생소하지만 이미 유럽과 영미 등지에서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독일이라면 독일어로, 영미권이라면 영어로 공연하는 게 당연하다고 믿고 있으며 실제 원작보다 언어와 무대, 시대적 배경을 등을 현실적으로 바꿔서 공연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그것이 그들의 생존법이기도 하다.
국내에도 20여 년 전 그럼 현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성악과 학생들도 원전오페라를 우리말로 번역해서 곧잘 연습하고 공연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해외 활동 성악가들이 증가하고 그들이 주요 무대를 장악하면서 오로지 원전만 고집하는 트렌드가 형성되었다.
이번 공연이 던져준 충격을 하나 더 언급한다면 모국어의 재조명이다. 언어학에 기초한 것인지는 몰라도 이미 이태리 언어에 익숙한 성악가들도 우리말을 쉽게 발음할 수 있도록 성악가들의 의견을 수렴한 뒤, 종성이나 폐음절 가사를 받침이 없는 다른 단어나 개음절로 바꾸었다는 사실이다. 의미에 따른 분절도 유의미한 묶음 단위로 바꾸었다. '아버지 가방에'라는 엉뚱한 프레이즈를 합리적으로 바꿨다는 뜻이다. 오페라는 고집스러운 시인들의 언어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다는 걸 이번 오페라는 보여준 셈이다.
'광대들'이 마포아트센터에서의 실험적 공연으로 끝날 것 같지 않다. 모쪼록 전국 공연장에서 두루두루 초청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막간극조차도 눈을 뗄 수 없는 묘기에 찬사가 마르지 않은 공연이 바로 광대들이다.
評 김종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