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램 -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17번 ‘가스타이너’, 스크랴빈 소나타 2, 3, 4번, 앙코르: 라흐마니노프 ‘보칼리제’
1994년부터 매년 여름 스위스 알프스 휴양지 베르비에에서 열리는 베르비에 페스티벌(Verbier Festival)은 세계적 거장과 신예가 함께 무대를 만들어가는 교류의 장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올해는 클라라 주미 강과 김선욱을 비롯해 한국 음악가들의 활약이 두드러졌으며, 특히 임윤찬의 참여는 페스티벌의 하이라이트로 기록될 만하다.
임윤찬은 2026년 7월 26일, 베르비에 페스티벌에서 손민수와 함께 라하브 샤니가 지휘하는 베르비에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 모차르트의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을 연주한 데 이어, 다니엘 로자코비치·키안 솔타니 등과 메트너의 피아노 5중주를 협연하고, 31일에는 단독 리사이틀을 개최했다. 일찌감치 매진된 이번 공연은 인근 ‘시네마 드 베르비에’에서 실시간 상영되었으며, 스위스 RTS TV와 메디치 TV가 생중계했다.
① 슈베르트 소나타 17번
올해 5월 서울 공연과 동일한 프로그램으로 진행된 이번 리사이틀은 슈베르트 소나타 17번으로 시작되었다. 임윤찬은 초판의 4분박 '아주 빠르게'(Allegro vivace) 대신 2/2 박자로 명시된 '빠르게'(Alla breve Allegro)를 택하며, 슈베르트를 베토벤적 강건함으로 재해석했다. 그러면서 중2병 걸린 여리고 내성적인 슈베르트에서 탈피한 강건한 마초형 베토벤의 근육이 떠올리게 되며 베토벤의 그늘에서 벗어난 슈베르트와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는 임윤찬의 모습이 중복되었다. 원전에 대한 존중은 전곡에 걸쳐 유지되었으며, 슬러와 스타카토의 명확한 구분은 2악장에서 불안정한 리듬 구조를 몽상적 분위기로 이끌었다. 이어지는 조바꿈과 선율 전개는 바그너의 ‘무한선율’을 연상케 했고, 다층적 구조 속에서 다양한 감정이 교차했다.
특히 4악장에서는 리듬적 전진감을 의도적으로 억제함으로써, 슈베르트 소나타가 지닌 구조적 이질성을 오히려 자연스럽게 감싸안았다. 슈베르트가 다소 즉흥적으로 병치한 듯한 서로 다른 성격의 악장들을 하나의 유기적인 서사로 엮어냈다. 이렇게 한 곡에서의 감정 전환과 구성에 대한 탄탄함이야말로 임윤찬이라는 피아니스트가 품은 우주가 얼마나 거대하고 포괄적인지를 보여 주는 대표적인 경우라 할 수 있겠다.
② 스크랴빈 소나타 2, 3, 4번
아타카(Attacca)로 쉼 없이 2번에서 3번으로, 3번에서 4번으로 넘어가면서 개개의 소나타가 아닌 스크랴빈 전체를 조망한 임윤찬은 3번 소나타의 부제이기도 한 ‘영혼의 상태’(States of the Soul)에 도달한 그 자체였다. 슈베르트에서 암시되었던 바그너적 '무한선율'의 감각은 스크랴빈에서도 또 다른 형태로 이어졌고, 하나의 보이지 않는 정신적 계보처럼 작품들을 관통했다. 그러다 보니 스크랴빈 역시 소나타의 악장이라기보다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천상천하 유아독존으로 세상에 반항하는 사춘기 중2병들의 집합체였다.
임윤찬은 이 8개의 통제하기 어려운 충동과 격정으로 가득한 문제아들, 반항과 충동으로 들끓는 청춘들을 이해하고 갱생시켰다. 2번 1악장의 무한의 자유와 고독, 2악장의 거친 대양과 같은 넘실거리는 환상과 광기, 3번 1과 4악장의 부점 리듬에, 급발진하여 주먹 쥐고 달려드는 청소년기의 소녀와 같은 2악장, 연민 넘친 3악장에 4악장의 몰아치는 절망을, 정말 보통의 연주자라면 절망에 빠지게 만드는 넓은 음정 도약이 연속되는 왼손을 끝까지 레가토로 연결하며, 이어지는 3연음까지 완벽하게 통제했다.
그래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거 하나도 없는 무기력한 현대인들에게 위로가 되며 무아에 빠지게 만든다. 주제 오스티나토에 왼손의 옥타브 타건을 한치 흐트러지지 않고 찍어 내리다니…. 언제 그랬냐는 듯 4번은 처음의 2번 1악장과 같은 진공상태로 돌아와 있었다. 3번과는 전혀 다른 음색의 트릴로 살랑거리는 임윤찬의 모습에 경탄을 넘어 다시 무력함이 몰려와 눈물이 흘러내렸다.
4번 1악장이 짧아서 다행이다. 그러지 않았다면 진공에서 돌아오지 못해 혼미한 상태로 현실로 돌아오지 못했을 텐데 2악장의 광속 같은 에너지는 초월적 체험으로 단숨에 법열(Ecstasy)의 경지로 이끌었다. 이는 단순한 연주가 아니라 하나의 철학적 체험이었다. 앙코르로 연주된 라흐마니노프의 ‘보칼리제’는 격정의 여정을 마무리하며 청중에게 깊은 울림을 남겼다.

③ 맺음말
베르비에 페스티벌 2026에서 임윤찬의 리사이틀은 단순한 기교의 과시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불안과 희망을 동시에 드러내는 예술적 사건이었다. 슈베르트와 스크랴빈을 통해 그는 음악을 서사적·철학적 체험으로 확장시켰으며, 현대인의 무력함을 음악적 초월로 승화시켰다. 이번 공연은 그가 단순히 뛰어난 피아니스트를 넘어, 동시대 음악의 의미를 새롭게 제시하는 예술가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評 성용원(작곡가, 본지 상임평론가)
프로그램 -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17번 ‘가스타이너’, 스크랴빈 소나타 2, 3, 4번, 앙코르: 라흐마니노프 ‘보칼리제’
1994년부터 매년 여름 스위스 알프스 휴양지 베르비에에서 열리는 베르비에 페스티벌(Verbier Festival)은 세계적 거장과 신예가 함께 무대를 만들어가는 교류의 장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올해는 클라라 주미 강과 김선욱을 비롯해 한국 음악가들의 활약이 두드러졌으며, 특히 임윤찬의 참여는 페스티벌의 하이라이트로 기록될 만하다.
임윤찬은 2026년 7월 26일, 베르비에 페스티벌에서 손민수와 함께 라하브 샤니가 지휘하는 베르비에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 모차르트의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을 연주한 데 이어, 다니엘 로자코비치·키안 솔타니 등과 메트너의 피아노 5중주를 협연하고, 31일에는 단독 리사이틀을 개최했다. 일찌감치 매진된 이번 공연은 인근 ‘시네마 드 베르비에’에서 실시간 상영되었으며, 스위스 RTS TV와 메디치 TV가 생중계했다.
① 슈베르트 소나타 17번
올해 5월 서울 공연과 동일한 프로그램으로 진행된 이번 리사이틀은 슈베르트 소나타 17번으로 시작되었다. 임윤찬은 초판의 4분박 '아주 빠르게'(Allegro vivace) 대신 2/2 박자로 명시된 '빠르게'(Alla breve Allegro)를 택하며, 슈베르트를 베토벤적 강건함으로 재해석했다. 그러면서 중2병 걸린 여리고 내성적인 슈베르트에서 탈피한 강건한 마초형 베토벤의 근육이 떠올리게 되며 베토벤의 그늘에서 벗어난 슈베르트와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는 임윤찬의 모습이 중복되었다. 원전에 대한 존중은 전곡에 걸쳐 유지되었으며, 슬러와 스타카토의 명확한 구분은 2악장에서 불안정한 리듬 구조를 몽상적 분위기로 이끌었다. 이어지는 조바꿈과 선율 전개는 바그너의 ‘무한선율’을 연상케 했고, 다층적 구조 속에서 다양한 감정이 교차했다.
특히 4악장에서는 리듬적 전진감을 의도적으로 억제함으로써, 슈베르트 소나타가 지닌 구조적 이질성을 오히려 자연스럽게 감싸안았다. 슈베르트가 다소 즉흥적으로 병치한 듯한 서로 다른 성격의 악장들을 하나의 유기적인 서사로 엮어냈다. 이렇게 한 곡에서의 감정 전환과 구성에 대한 탄탄함이야말로 임윤찬이라는 피아니스트가 품은 우주가 얼마나 거대하고 포괄적인지를 보여 주는 대표적인 경우라 할 수 있겠다.
② 스크랴빈 소나타 2, 3, 4번
아타카(Attacca)로 쉼 없이 2번에서 3번으로, 3번에서 4번으로 넘어가면서 개개의 소나타가 아닌 스크랴빈 전체를 조망한 임윤찬은 3번 소나타의 부제이기도 한 ‘영혼의 상태’(States of the Soul)에 도달한 그 자체였다. 슈베르트에서 암시되었던 바그너적 '무한선율'의 감각은 스크랴빈에서도 또 다른 형태로 이어졌고, 하나의 보이지 않는 정신적 계보처럼 작품들을 관통했다. 그러다 보니 스크랴빈 역시 소나타의 악장이라기보다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천상천하 유아독존으로 세상에 반항하는 사춘기 중2병들의 집합체였다.
임윤찬은 이 8개의 통제하기 어려운 충동과 격정으로 가득한 문제아들, 반항과 충동으로 들끓는 청춘들을 이해하고 갱생시켰다. 2번 1악장의 무한의 자유와 고독, 2악장의 거친 대양과 같은 넘실거리는 환상과 광기, 3번 1과 4악장의 부점 리듬에, 급발진하여 주먹 쥐고 달려드는 청소년기의 소녀와 같은 2악장, 연민 넘친 3악장에 4악장의 몰아치는 절망을, 정말 보통의 연주자라면 절망에 빠지게 만드는 넓은 음정 도약이 연속되는 왼손을 끝까지 레가토로 연결하며, 이어지는 3연음까지 완벽하게 통제했다.
그래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거 하나도 없는 무기력한 현대인들에게 위로가 되며 무아에 빠지게 만든다. 주제 오스티나토에 왼손의 옥타브 타건을 한치 흐트러지지 않고 찍어 내리다니…. 언제 그랬냐는 듯 4번은 처음의 2번 1악장과 같은 진공상태로 돌아와 있었다. 3번과는 전혀 다른 음색의 트릴로 살랑거리는 임윤찬의 모습에 경탄을 넘어 다시 무력함이 몰려와 눈물이 흘러내렸다.
4번 1악장이 짧아서 다행이다. 그러지 않았다면 진공에서 돌아오지 못해 혼미한 상태로 현실로 돌아오지 못했을 텐데 2악장의 광속 같은 에너지는 초월적 체험으로 단숨에 법열(Ecstasy)의 경지로 이끌었다. 이는 단순한 연주가 아니라 하나의 철학적 체험이었다. 앙코르로 연주된 라흐마니노프의 ‘보칼리제’는 격정의 여정을 마무리하며 청중에게 깊은 울림을 남겼다.
③ 맺음말
베르비에 페스티벌 2026에서 임윤찬의 리사이틀은 단순한 기교의 과시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불안과 희망을 동시에 드러내는 예술적 사건이었다. 슈베르트와 스크랴빈을 통해 그는 음악을 서사적·철학적 체험으로 확장시켰으며, 현대인의 무력함을 음악적 초월로 승화시켰다. 이번 공연은 그가 단순히 뛰어난 피아니스트를 넘어, 동시대 음악의 의미를 새롭게 제시하는 예술가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評 성용원(작곡가, 본지 상임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