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스타’와 ‘예고된 스타’를 동시에 감상한 리골레토

2026년 8월 7일~8일 서귀포예술의전당 대극장


서귀포 오페라페스티벌의 작품 ‘리골레토’는 바리톤 김정민의 스타 탄생을 예고하는 무대였다. 출연진 모두 훌륭했지만 30대 초반의 바리톤이 스승에 대한 청출어람의 경계를 넘나드는 순간을 보는 것 같아 내내 흥분을 소화하지 못했다. 그의 스승은 누구인지 접어두자. 김정민이 아무리 훌륭하다 해도 나같은 점잖은 스타일이 갑자기 용수철처럼 튀어올라 고성을 지를 수는 없는 노릇.

만토바 역을 열연한 테너 김건우에 대한 기대, 질다를 호연한 박소영의 기대도 있었지만 일단 그 문제는 말을 아끼자. 사실 1막까지는 김정민의 두각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나 2막의 고개를 넘으며 내 육감은 온통 바리톤 김정민으로 쏠렸다. 

둘째 날 출연한 바리톤 고성현이야 말해 무얼할까. 어쩌면 ‘고성현의 리골레토는 지금부터가 아닐까’ 할 정도로 듣는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초절의 노래과 액팅, 손끝 하나에도 감정을 담은 극적 표현력과 이를 뒷받침하는 유니크한 탬버와 공명, 소리의 투사력은 ‘여전히 고성현’이라는 탄사가 절로 터져나왔다. 지금 바리톤 고성현이 ‘아이고 이 나이에... 제자들이나 잘 키워야지’ 하면서 겸손할 때가 아님을 증명하는 무대였다.


리골레토에서 천변만화의 감정표현과 음색의 시금석을 논할 때는 역시 ‘Cortigiani, vil razza dannata’(궁정의 신하들, 저주받은 비열한 놈들아)를 꼽는다. 이 노래는 넷플릭스 시리즈 ‘김부장’의 폭력적인 복수와 응징의 감정을 뛰어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딸을 납치당한 아빠로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분노, 저주, 그러다 애원하는 내용을 어찌 가사로만 표현할 수 있을까? 대략 짐작해봐도 다양한 발성과 대여섯 가지 능란한 음색으로 그 감정을 조율해나가야 한다. 김정민이 그랬다. 어느새 그의 스승 고성현을 따라가고 있었다.

이틀 동안 연속해서 감상했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김정민의 노래와 고성현의 노래에 푹 빠지는 행운을 얻었다. 

2막부터 시작된 김정민의 질주는 거침이 없었다. 리골레토에 대한 공연 경험이 얼마인지는 모르겠으나 오케스트라를 뚫고 나가는 포르테와 절제된 피아니시모, 그리고 스퀼로의 폼새가 딱 젊은 고성현, 싱싱한 고성현에게 다가가 있었다.

리골레토에는 ‘La donna è mobile’와 같은 널리 알려진 아리아가 많지만 ‘Si, vendetta’(그래 복수다)에서 절정을 이룬다. 고성현과 달리 김정민으로서는 혈기가 넘쳐 복수심이 강하게 드러나는 포싱에 잠식되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런 실망을 주지 않았다. 질다의 레가토와 호흡을 맞추기라도 하듯 분노를 내면으로 응축한 까닭이다.


첫날 공연이 끝난 후, 청중들은 김정민에 대해 새삼 눈독을 마구 들였다. 새로운 바리톤의 탄생을 칭찬하고 반기는 분위기가 분명했다. 하루가 지나고 이튿날 바리톤 고성현의 무대를 보고난 후에는 제자의 칭찬이 잠시 누구러졌지만 청중들의 뇌리 속에 김정민의 이름이 깊이 각인된 것은 사실이다. 뒤풀이에서도 온통 김정민 얘기뿐이었으니 말이다.

이날 무대에 선 성악가들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모두 훌륭했지만 리골레토의 주인공이 역시 ‘리골레토’인 이상 아무래도 회자의 대상은 리골레토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만토바 김건우, 질다 박소영, 스파라푸치레 윤희섭, 막달레나 김순희, 마룰로 최은석, 보르사 원유대, 체프라노 유재언, 몬테로네 한혜열, 죠반나 김다미, 체프라노부인 이주리... 그리고 위너오페라합창단 등 짧은 연습기간임에도 이렇게 훌륭한 무대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이들의 땀과 열정이 있었음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무엇보다 마음고생이 심했을 김수정 예술감독의 리더십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글 김종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