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8월 18일(화) 오후 7시30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프로그램: 라벨 ‘라 발스’, 피아노 협주곡, ‘다프니스와 끌로에’
2023년 ‘여름음악축제’라는 이름으로 처음 시작한 예술의전당 국제음악제(Seoul Art Center International Music Festival)는 2024년부터 ‘국제음악제’로 이름을 바꾸며 규모와 위상을 한 단계 높였다. 올해로 4회째를 맞은 이 음악제는 8월 18일 화요일부터 23일 일요일까지 엿새 동안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세계적인 해외 아티스트들과 공모를 통해 선발된 국내 연주자들이 함께하는 16개의 음악회를 선보인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주요 콘서트를 선별해 관람하고 ‘월간리뷰’에 그 감상을 남겨 독자 여러분께 소개하고자 한다.
① SAC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 국립합창단
SAC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는 해외 유수의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연주자들을 수석과 단원으로 단기간에 모아 조직한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다. 2024년 단 에팅거, 2025년 로렌스 르네스에 이어 올해는 이승원이 지휘봉을 잡았다. 프로그램은 모리스 라벨의 작품만으로 구성한 올 프렌치(All French)였다. 악장에는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종신 제1부악장인 조윤진이, 수석에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밤베르크 심포니커의 설민경이 참여했다. 첼로 수석에는 지난해에도 함께했던 문태국이 포진했고, NDR 엘프필하모닉의 플루티스트 한여진도 눈에 띄었다. 그 밖에도 외국에서 유학하거나 현지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하는 연주자들이 다수 참여했다. 문제는 이처럼 뛰어난 개별 연주자들을 짧은 기간에 하나의 오케스트라로 묶어야 한다는 데 있다. 리허설 횟수가 제한될 수밖에 없는 ad hoc 성격의 악단인 만큼, 서로 다른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하는 연주자들이 얼마나 빠르게 하나의 앙상블을 만들어낼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지난해에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돈 후안’과 ‘영웅의 생애’, 그리고 오페라 ‘장미의 기사’ 관현악 모음곡을 올렸고, 폐막 공연에서는 말러 교향곡 제1번 ‘거인’을 연주했다. 올해는 라벨의 ‘라 발스’, 피아노 협주곡, ‘다프니스와 끌로에’라는 만만치 않은 레퍼토리를 선택했다. 8월 23일 파이널 콘서트에서는 쇼스타코비치 첼로 협주곡과 교향곡 제5번이 예정되어 있다.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성격과 제한된 연습 여건을 생각하면, 곡의 난이도를 조금 낮추는 것도 방법이 아닐까 싶다. 라벨은 특히 오케스트라를 다루는 비르투오시티가 극단적으로 높은 작곡가다. 음 하나하나의 정확성뿐 아니라 각각의 악기가 순간적으로 등장하고 사라지는 정교한 앙상블과 색채감이 요구된다. 이번 공연에서는 바로 이 부분에서 오케스트라의 한계가 드러났다. 피아노 협주곡 초반부터 금관, 특히 트럼펫이 지나치게 튀었고 피아니스트가 이끄는 빠른 템포를 따라가는 데 어려움을 보였다. 목관과 금관이 다른 파트의 소리를 충분히 들으며 앙상블을 만들어내기보다는 자신의 소리를 내는 데 집중하는 듯한 순간도 있었다. 정작 반드시 부각되어야 할 악기가 다른 그룹의 소리에 묻히는 경우도 있었다. 현악 역시 마찬가지였다. 풀트를 많이 세운다고 해서 앙상블의 밀도가 자동으로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뒤로 갈수록 연주 자세가 뻣뻣해지고 음악적 긴장감이 떨어지는 모습은 국내 오케스트라에서 종종 발견되는 고질적인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 3풀트 이후부터는 활을 사용하는 움직임과 손가락이 돌아가는 속도에서 앞쪽 수석들과 확연한 차이가 느껴졌고, 앙상블이 하나로 맞물리지 못한 채 제각각 움직이는 순간도 적지 않았다. 듣고 있으면 전체 오케스트라의 문제라기보다 개인별 준비도의 차이가 그대로 드러나는 순간이 있었다. 합창단 역시 아쉬움을 남겼다. 2장 앞부분의 남성 아카펠라는 음정이 제대로 맞지 않아 상당히 불안하게 들렸으며, 전체적으로 작품 자체에 아직 충분히 익숙해지지 못한 듯했다. 곡을 충분히 소화하지 못한 연습 부족의 흔적이 곳곳에서 느껴졌다.
② 이승원, 제한된 조건에서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무모한 도전자
그럼에도 이번 공연에서 분명하게 돋보인 사람이 있다. 바로 지휘자 이승원이다. 이승원은‘라 발스’에서는 맨손으로 암보 지휘를 했고, 피아노 협주곡에서는 보면대와 악보를 사용했으며, ‘다프니스와 끌로에’에서는 다시 암보와 지휘봉을 활용했다. 올해 5월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와 올 아메리칸(All American) 프로그램을 구성해 미국 음악의 그루브와 재즈, 맘보의 감각을 직접 보여주었던 것과는 또 달랐다. 이번에는 마치 오케스트라를 살라미처럼 얇게 슬라이스해 각각의 단면을 정교하게 보여주는 듯한 프랑스적 감각, 즉 프랑스 에스프리를 들려주었다. 작품을 파악하고 다루는데 한없는 여유와 관록이 느껴졌다. 라벨에 대한 학습도 깊었다. 각각의 음향과 색채를 단순히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전체적인 흐름 속에서 배치했으며, 전개의 방향도 명확했다. 단기간에 만나 몇 차례 맞춰본 뒤 포디움에 서는 객원 지휘자의 일반적인 작업 방식과는 다른 인상을 주었다. 만약 자신이 상임 또는 음악감독으로 있는 단체를 장기간 이끌 수 있는 조건이라면 분명 상당한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지휘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다프니스와 끌로에’에서 그의 장점이 두드러졌다. 발레의 전체 내용을 알지 못한다면 음악적인 맥락을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 각각의 장면과 음악적 단편은 영롱하고 매혹적이지만, 이를 부분적으로 떼어내 연주하면 자칫 작위적인 음악적 콜라주처럼 들릴 수도 있다. 이승원은 각각의 단면을 효과적으로 연결해 하나의 흐름으로 만들어냈다. 작품의 색채와 구조에 맞게 라벨의 극도로 정교한 오케스트레이션을 최대한 끌어내었다.
③ 케빈 첸, 라벨 다음에 확인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2005년생 캐나다 출신인 케빈 첸(Kevin Chen, 陳禹同)은 2025년 제19회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며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차세대 피아니스트다. 그의 진면목은 8월 19일 리스트로만 구성된 독주회에서 보다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을 것 같다. 라벨에서는 젊은 패기 때문인지 전체적으로 템포를 상당히 빠르게 몰고 갔다. 이것이 라벨 협주곡에서 나타난 일시적인 선택인지, 아니면 그의 연주 전반에 나타나는 음악적 성향인지는 독주회를 들어봐야 판단할 수 있다. 불과 한 달 전 ‘초절기교 연습곡’ 전곡을 완주한 선율, 5월 7일 데카 레이블을 통해 프란츠 리스트가 작편곡한 11곡을 담은 앨범 ‘리스트’를 출시하고 전국 투어를 한 선우예권, 5월 27일 ‘혼례’와 ‘단테 소나타’ 등을 들려준 에바 게보르기안 등 케빈 첸 또래의 젊은 피아니스트 가운데 리스트를 중심으로 화려한 테크닉을 보여주는 연주자는 이미 많다. 라벨 협주곡에서 받은 첫인상은 작은 체구에서 오는 박력과 파워가 다소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다만 아기자기하고 섬세한 라벨에서는 오히려 그런 신체적 조건을 재간둥이처럼 활용하며 자신의 장점을 부각했다. 따라서 리스트 리사이틀이 더욱 궁금해진다. 고도의 테크닉과 강한 정신적 집중력을 요구하는 리스트의 레퍼토리에서 그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서정성과 유머, 재즈적 색채가 뒤섞인 라벨에서 보여준 영민함과 리스트의 초절기교 사이에 어떤 차별점을 만들어낼지가 관건이다.
④ ‘고향으로 돌아온 음악인들’이 만드는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존재 이유는 단순히 유명한 연주자들을 한 무대에 모아놓는 데 있지 않다. 여름 음악축제는 세계 각지에서 활동하는 젊은 음악인들을 ‘고향으로’, 그리고 ‘고국으로’ 불러들이는 일이기도 하다. 서로 다른 곳에서 활동하는 음악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하나의 음악적 공동체를 형성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 오케스트라의 기량은 결국 누가 그 안에 포함되어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국내 연주회에서도 객원 연주자의 참여 여부에 따라 오케스트라의 실력이 크게 달라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평소에는 각자의 자리에서 활동하는 뛰어난 연주자들이 한자리에 모였을 때 비로소 만들어낼 수 있는 특별한 음악적 경험이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SAC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는 아직 완성형이라기보다 성장 과정에 있는 악단이다. 지난해 멤버 변동이 커서 같은 이름을 달고 있지만 사실상 새로운 오케스트라가 매번 출범하는 것과 같았다면, 올해는 같은 멤버들이 개막과 폐막을 이룬다는 점에서 밀착도와 숙련도가 높아질 여지가 있다. 이승원이라는 지휘자와 수준 높은 개별 연주자들이 모였을 때 라벨이라는 까다로운 레퍼토리도 어디까지 가능할 수 있는지도 확인할 수 있었다. 결국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미래는 ‘누가 모이느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얼마나 함께 준비하느냐’에 달려 있다. 세계 각지에서 활동하는 한국 음악인들을 다시 고국으로 불러들이는 것에서 출발한 이 악단이 단순한 프로젝트성 오케스트라를 넘어 서울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여름 음악 축제의 고유한 음악적 자산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남은 공연과 앞으로의 행보를 지켜볼 일이다.
評 성용원(작곡가, 본지 상임평론가)
2026년 8월 18일(화) 오후 7시30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프로그램: 라벨 ‘라 발스’, 피아노 협주곡, ‘다프니스와 끌로에’
2023년 ‘여름음악축제’라는 이름으로 처음 시작한 예술의전당 국제음악제(Seoul Art Center International Music Festival)는 2024년부터 ‘국제음악제’로 이름을 바꾸며 규모와 위상을 한 단계 높였다. 올해로 4회째를 맞은 이 음악제는 8월 18일 화요일부터 23일 일요일까지 엿새 동안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세계적인 해외 아티스트들과 공모를 통해 선발된 국내 연주자들이 함께하는 16개의 음악회를 선보인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주요 콘서트를 선별해 관람하고 ‘월간리뷰’에 그 감상을 남겨 독자 여러분께 소개하고자 한다.
① SAC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 국립합창단
SAC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는 해외 유수의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연주자들을 수석과 단원으로 단기간에 모아 조직한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다. 2024년 단 에팅거, 2025년 로렌스 르네스에 이어 올해는 이승원이 지휘봉을 잡았다. 프로그램은 모리스 라벨의 작품만으로 구성한 올 프렌치(All French)였다. 악장에는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종신 제1부악장인 조윤진이, 수석에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밤베르크 심포니커의 설민경이 참여했다. 첼로 수석에는 지난해에도 함께했던 문태국이 포진했고, NDR 엘프필하모닉의 플루티스트 한여진도 눈에 띄었다. 그 밖에도 외국에서 유학하거나 현지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하는 연주자들이 다수 참여했다. 문제는 이처럼 뛰어난 개별 연주자들을 짧은 기간에 하나의 오케스트라로 묶어야 한다는 데 있다. 리허설 횟수가 제한될 수밖에 없는 ad hoc 성격의 악단인 만큼, 서로 다른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하는 연주자들이 얼마나 빠르게 하나의 앙상블을 만들어낼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지난해에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돈 후안’과 ‘영웅의 생애’, 그리고 오페라 ‘장미의 기사’ 관현악 모음곡을 올렸고, 폐막 공연에서는 말러 교향곡 제1번 ‘거인’을 연주했다. 올해는 라벨의 ‘라 발스’, 피아노 협주곡, ‘다프니스와 끌로에’라는 만만치 않은 레퍼토리를 선택했다. 8월 23일 파이널 콘서트에서는 쇼스타코비치 첼로 협주곡과 교향곡 제5번이 예정되어 있다.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성격과 제한된 연습 여건을 생각하면, 곡의 난이도를 조금 낮추는 것도 방법이 아닐까 싶다. 라벨은 특히 오케스트라를 다루는 비르투오시티가 극단적으로 높은 작곡가다. 음 하나하나의 정확성뿐 아니라 각각의 악기가 순간적으로 등장하고 사라지는 정교한 앙상블과 색채감이 요구된다. 이번 공연에서는 바로 이 부분에서 오케스트라의 한계가 드러났다. 피아노 협주곡 초반부터 금관, 특히 트럼펫이 지나치게 튀었고 피아니스트가 이끄는 빠른 템포를 따라가는 데 어려움을 보였다. 목관과 금관이 다른 파트의 소리를 충분히 들으며 앙상블을 만들어내기보다는 자신의 소리를 내는 데 집중하는 듯한 순간도 있었다. 정작 반드시 부각되어야 할 악기가 다른 그룹의 소리에 묻히는 경우도 있었다. 현악 역시 마찬가지였다. 풀트를 많이 세운다고 해서 앙상블의 밀도가 자동으로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뒤로 갈수록 연주 자세가 뻣뻣해지고 음악적 긴장감이 떨어지는 모습은 국내 오케스트라에서 종종 발견되는 고질적인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 3풀트 이후부터는 활을 사용하는 움직임과 손가락이 돌아가는 속도에서 앞쪽 수석들과 확연한 차이가 느껴졌고, 앙상블이 하나로 맞물리지 못한 채 제각각 움직이는 순간도 적지 않았다. 듣고 있으면 전체 오케스트라의 문제라기보다 개인별 준비도의 차이가 그대로 드러나는 순간이 있었다. 합창단 역시 아쉬움을 남겼다. 2장 앞부분의 남성 아카펠라는 음정이 제대로 맞지 않아 상당히 불안하게 들렸으며, 전체적으로 작품 자체에 아직 충분히 익숙해지지 못한 듯했다. 곡을 충분히 소화하지 못한 연습 부족의 흔적이 곳곳에서 느껴졌다.
② 이승원, 제한된 조건에서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무모한 도전자
그럼에도 이번 공연에서 분명하게 돋보인 사람이 있다. 바로 지휘자 이승원이다. 이승원은‘라 발스’에서는 맨손으로 암보 지휘를 했고, 피아노 협주곡에서는 보면대와 악보를 사용했으며, ‘다프니스와 끌로에’에서는 다시 암보와 지휘봉을 활용했다. 올해 5월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와 올 아메리칸(All American) 프로그램을 구성해 미국 음악의 그루브와 재즈, 맘보의 감각을 직접 보여주었던 것과는 또 달랐다. 이번에는 마치 오케스트라를 살라미처럼 얇게 슬라이스해 각각의 단면을 정교하게 보여주는 듯한 프랑스적 감각, 즉 프랑스 에스프리를 들려주었다. 작품을 파악하고 다루는데 한없는 여유와 관록이 느껴졌다. 라벨에 대한 학습도 깊었다. 각각의 음향과 색채를 단순히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전체적인 흐름 속에서 배치했으며, 전개의 방향도 명확했다. 단기간에 만나 몇 차례 맞춰본 뒤 포디움에 서는 객원 지휘자의 일반적인 작업 방식과는 다른 인상을 주었다. 만약 자신이 상임 또는 음악감독으로 있는 단체를 장기간 이끌 수 있는 조건이라면 분명 상당한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지휘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다프니스와 끌로에’에서 그의 장점이 두드러졌다. 발레의 전체 내용을 알지 못한다면 음악적인 맥락을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 각각의 장면과 음악적 단편은 영롱하고 매혹적이지만, 이를 부분적으로 떼어내 연주하면 자칫 작위적인 음악적 콜라주처럼 들릴 수도 있다. 이승원은 각각의 단면을 효과적으로 연결해 하나의 흐름으로 만들어냈다. 작품의 색채와 구조에 맞게 라벨의 극도로 정교한 오케스트레이션을 최대한 끌어내었다.
③ 케빈 첸, 라벨 다음에 확인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2005년생 캐나다 출신인 케빈 첸(Kevin Chen, 陳禹同)은 2025년 제19회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며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차세대 피아니스트다. 그의 진면목은 8월 19일 리스트로만 구성된 독주회에서 보다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을 것 같다. 라벨에서는 젊은 패기 때문인지 전체적으로 템포를 상당히 빠르게 몰고 갔다. 이것이 라벨 협주곡에서 나타난 일시적인 선택인지, 아니면 그의 연주 전반에 나타나는 음악적 성향인지는 독주회를 들어봐야 판단할 수 있다. 불과 한 달 전 ‘초절기교 연습곡’ 전곡을 완주한 선율, 5월 7일 데카 레이블을 통해 프란츠 리스트가 작편곡한 11곡을 담은 앨범 ‘리스트’를 출시하고 전국 투어를 한 선우예권, 5월 27일 ‘혼례’와 ‘단테 소나타’ 등을 들려준 에바 게보르기안 등 케빈 첸 또래의 젊은 피아니스트 가운데 리스트를 중심으로 화려한 테크닉을 보여주는 연주자는 이미 많다. 라벨 협주곡에서 받은 첫인상은 작은 체구에서 오는 박력과 파워가 다소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다만 아기자기하고 섬세한 라벨에서는 오히려 그런 신체적 조건을 재간둥이처럼 활용하며 자신의 장점을 부각했다. 따라서 리스트 리사이틀이 더욱 궁금해진다. 고도의 테크닉과 강한 정신적 집중력을 요구하는 리스트의 레퍼토리에서 그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서정성과 유머, 재즈적 색채가 뒤섞인 라벨에서 보여준 영민함과 리스트의 초절기교 사이에 어떤 차별점을 만들어낼지가 관건이다.
④ ‘고향으로 돌아온 음악인들’이 만드는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존재 이유는 단순히 유명한 연주자들을 한 무대에 모아놓는 데 있지 않다. 여름 음악축제는 세계 각지에서 활동하는 젊은 음악인들을 ‘고향으로’, 그리고 ‘고국으로’ 불러들이는 일이기도 하다. 서로 다른 곳에서 활동하는 음악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하나의 음악적 공동체를 형성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 오케스트라의 기량은 결국 누가 그 안에 포함되어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국내 연주회에서도 객원 연주자의 참여 여부에 따라 오케스트라의 실력이 크게 달라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평소에는 각자의 자리에서 활동하는 뛰어난 연주자들이 한자리에 모였을 때 비로소 만들어낼 수 있는 특별한 음악적 경험이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SAC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는 아직 완성형이라기보다 성장 과정에 있는 악단이다. 지난해 멤버 변동이 커서 같은 이름을 달고 있지만 사실상 새로운 오케스트라가 매번 출범하는 것과 같았다면, 올해는 같은 멤버들이 개막과 폐막을 이룬다는 점에서 밀착도와 숙련도가 높아질 여지가 있다. 이승원이라는 지휘자와 수준 높은 개별 연주자들이 모였을 때 라벨이라는 까다로운 레퍼토리도 어디까지 가능할 수 있는지도 확인할 수 있었다. 결국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미래는 ‘누가 모이느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얼마나 함께 준비하느냐’에 달려 있다. 세계 각지에서 활동하는 한국 음악인들을 다시 고국으로 불러들이는 것에서 출발한 이 악단이 단순한 프로젝트성 오케스트라를 넘어 서울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여름 음악 축제의 고유한 음악적 자산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남은 공연과 앞으로의 행보를 지켜볼 일이다.
評 성용원(작곡가, 본지 상임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