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현 피아노 리사이틀

2026년 9월 6일(일) 오후 7시 30분 롯데콘서트홀
 
프로그램: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18번 G장조, 쇼팽 뱃노래, 12개의 연습곡 Op. 25, 앙코르: 아르보 패르트 ‘알리나를 위하여’, 쇼팽 프렐류드 11번 B장조, 포레 ‘꿈을 꾼 후에’ (김세현 편곡), 즉흥곡 2번 f단조, 뱃노래 1번, 쇼팽 마주르카 D장조 Op. 33-2, 녹턴 8번 Db장조 Op. 27-2, 샤를 트르네 / 4월의 파리에서 (알렉시스 바이젠베르크 편곡), 쇼팽 녹턴 20번 c#단조 Op. Posth, 왈츠 Op. 64 No.1

 

2025년 롱티보 국제 콩쿠르에서 김세현이 보여준 행보는 단숨에 그를 한국 클래식 음악계의 새로운 주목할 이름으로 끌어올렸다. 세미파이널에서 쇼팽 에튀드 Op.25 전곡을 연주하고, 파이널에서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선택해 17세의 나이로 최연소 우승을 차지했다. 여기에 청중상, 평론가상, 파리 특별상까지 휩쓸었다. 지난해 8월 예술의전당 국제음악제 IBK홀에서 처음 직접 만났던 그가 불과 1년 만에 롯데콘서트홀을 가득 채우는 스타 피아니스트가 되었다는 사실은 놀라웠다. 더욱이 공연을 듣기 불과 2주 전 평택에서 정명훈이 지휘하는 KBS교향악단과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협연하는 모습을 보았기에 워너 클래식 인터내셔널 데뷔 앨범의 수록곡을 중심으로 꾸며진 이번 독주회를 통해, 짧은 시간 동안 그의 음악적 성장이 어디까지 진행되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자리이기도 했다. 2007년생으로 올해 18세인 김세현은 한국에서 신수정과 최영미를 사사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대학교 영문학과와 뉴잉글랜드 음악원에서 당 타이손과 백혜선에게 배우고 있다. 음악과 인문학을 함께 공부하는 그의 배경 때문인지, 이번 연주에서도 단순한 기교의 과시보다는 음과 음 사이의 공간, 선율의 호흡, 서로 다른 성부의 관계를 세심하게 바라보는 태도가 두드러졌다.

 

① 시간이 멈춘 듯한 서정과 평화

 

슈베르트 소나타가 최근 한국을 대표하는 젊은 피아니스트들의 무대에서 잇달아 등장한다는 사실은 슈베르티아데의 입장에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난 5월 선우예권이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슈베르트 소나타 20번을 연주했고, 8월에는 임윤찬이 스위스 베르비에에서 17번을 연주했다. 그리고 이날 김세현은 18번을 선택했다. 슈베르트 음악에 오랫동안 따라붙었던 ‘지루하다’, ‘단조롭다’, ‘반복이 심하다’라는 오해를 이들의 연주가 조금씩 씻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슈베르트의 반복은 결코 정지된 반복이 아니며, 같은 선율이 돌아올 때마다 시간과 기억의 층위가 달라진다. 그 안에서 슈베르트 특유의 순진무구하고 천진난만한 천상의 세계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런 의미에서 김세현의 슈베르트는 무엇보다 맑았다. 물론 어린 연주자라고 해서 반드시 순수한 음악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김세현에게는 분명 또래의 연주자에게서 쉽게 발견하기 어려운 섬세함과 부드러움이 있었다. 그는 서두르지 않았다. 몇 번이고 호흡을 고르며 음악 안으로 들어갈 준비했다. 마치 명상적인 대화를 나누듯 내면의 고요함을 찾아갔다. 그 결과 그의 슈베르트는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선율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눈을 감으면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이 들었다. 슈베르트 현악오중주 2악장에서 느껴지는 그 ‘시간이 멈춘 듯한 서정과 평화’를 피아노 한 대로 펼쳐 보인 것이다. 약 40분에 가까운 러닝 타임 동안 객석은 조용히 그의 꿈속을 따라갔다. 여기에는 상당한 집중력과 통제력이 필요하다. 특히 대형 홀에서는 작은 소리로 음악의 긴장을 유지하는 일이 쉽지 않다. 그러나 김세현은 자신의 호흡과 다이내믹을 철저히 통제하며 슈베르트의 긴 호흡을 끝까지 유지했다. 지난해와 비교했을 때 가장 눈에 띄는 성장은 바로 이런 음악적 집중력과 자기 통제력이었다.

 ② 맑은 슈베르트, 빛나는 쇼팽

 

2부 쇼팽은 전혀 다른 얼굴이 나타났다. 슈베르트의 부드러움과 비교하면 훨씬 선명하고 힘 있는 음색이었다. 그렇다고 거칠거나 우악스러운 쇼팽은 아니었다. 오히려 1부의 슈베르트가 워낙 여리고 투명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강하게 느껴졌다고 하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슈베르트에서 김세현이 18세의 소년이 아니라 인생을 달관한 듯한 애늙은이처럼 느껴졌다면, 쇼팽에서는 비로소 테크니션의 면모를 마음껏 발휘하는 하이틴 스타가 되었다. 쇼팽 에튀드가 시작되자 자연스럽게 임윤찬이 떠올랐다. 임윤찬이 2년 전 데카(Decca)에서 발표한 쇼팽 에튀드 음반이 이제 하나의 ‘Must Have’ 음반으로 자리 잡은 상황에서, 그보다 세 살 어린 김세현 역시 Op. 25 전곡을 음반과 라이브 무대에서 보여주고 있다는 것은 한국 클래식 음악사에서도 흥미로운 사건이다.

김세현의 쇼팽 에튀드는 전체적으로 밝고 영롱했다. 김세현의 연주에서 특히 인상적인 것은 음과 음 사이에 공간을 두고 그 공간까지 음악으로 해석하는 능력이었다. 각각의 성부와 음색을 분리해 들려주면서도 전체적인 음악의 흐름을 놓치지 않았다. 이는 지금까지 직접 들었던 그의 세 차례 연주에서 공통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특징이며, 당 타이손과 백혜선에게 받은 교육의 영향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1번의 빠른 아르페지오에서도 기계적으로 음표를 쏟아내기보다는 루바토와 굴곡을 만들어냈다. 6번의 3도 병행에서도 마찬가지였으며, 8번의 6도 레가토에서도 일정한 속도로 밀어붙이기보다는 선율의 호흡을 살렸다. 5번 중간 부분에서 왼손으로 등장하는 굵은 선율의 선명한 존재감, 7번의 레치타티보적인 표현, 10번 트리오에서 보여준 유장한 호흡도 돋보였다. 특히 10번에서는 옥타브 하나하나를 낱낱이 드러내기보다 그것들을 하나의 커다란 덩어리로 묶어 처리하는 방식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11번과 12번. 폭풍 같은 에너지가 몰아치는 가운데 순간적으로 폐부를 찌르는 듯한 차가움이 공존했다. 기술적으로 가장 화려한 순간이었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호연이라고 평가하고 싶은 곡은 오히려 그보다 자연스럽고 가벼웠던 2번이었다. 슈베르트 즉흥곡을 연상시킬 만큼 아무런 힘을 들이지 않은 듯 흘러가는 순간들에서 김세현이라는 피아니스트의 본질이 더욱 잘 드러났기 때문이다.
 

③ 김세현의 현재와 미래

 

앙코르가 무려 10곡이나 이어졌지만 놀랍지는 않았다. 김세현은 정말로 피아노를 좋아하는 피아니스트처럼 보였다. 피아노에서 내려가기 싫어하는 사람, 피아노와 일심동체가 된 사람 같았다. 어떻게든 피아노를 빼앗으려 한다면 악기를 부둥켜안고 놓지 않으려 할 것 같은 천진난만함이 있었다. 그것은 단순히 어린 연주자에게서 발견되는 귀여움과는 달랐다. 허세가 없는 순수한 에고(Ego)였다. 그리고 그 에고가 음악 안에서는 엄청난 추진력으로 변했다. 2022년 롱티보 콩쿠르에서 김세현에 앞서 우승했던 이혁을 떠올리게 되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었다. 두 사람 모두 뛰어난 재능과 놀라운 기교, 그리고 무대에서 관객을 끌어당기는 특별한 매력을 지녔다. 그러나 콩쿠르에서의 성공은 출발점이지 종착점이 아니다.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젊은 연주자일수록 그 이후의 시간이 더욱 중요하다. 롯데콘서트홀을 가득 채운 이날의 김세현은 이미 스타였다. 그러나 더욱 기대되는 것은 지금의 스타 김세현이 아니라, 앞으로 어떤 예술가로 성장할지 아직 아무도 알 수 없는 18세 김세현의 가능성이다. 슈베르트에서는 시간이 멈췄고, 쇼팽에서는 시간이 질주했다. 그리고 앙코르에서는 그저 피아노와 함께 있는 것이 행복해 보이는 한 소년이 있었다. 아마 지금 김세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박수도, 더 많은 타이틀도 아닐 것이다. 피아노와 음악을 사랑하는 지금의 마음을 잃지 않는 것. 그것이면 충분하다.

 

評 성용원(작곡가 본지 상임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