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아라 바이올린 독주회, 작곡가 알파벳 시리즈 VI J-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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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29일(수) 오후 7시 30분, 세종체임버홀


프로그램: 야나체크 ‘둠카’ 다단조, 바이올린 소나타 올림사단조, 크라이슬러 & 림스키코르사코프 ‘세헤라자데’ 중 ‘동양의 춤’, ‘아라비아의 노래’, 코른골트 ‘헛소동’ 중 4개의 소품집, 앙코르: 크라이슬러 ‘싱코페이션’


해설을 맡은 송현민의 설명처럼 알파벳의 첫 자를 딴 작곡가 시리즈는 지구 역사상 바이올리니스트 이아라가 최초이지 않을까 싶다. 2010년 알파벳 A의 알비노니(Albinoni)부터 시작하여 벌써 16번째를 맞은 대장정이 J-K에 도달하여 야나체크와 코른골트를 하게 되었다. 2023년 JCC아트센터 콘서트홀에서 열렸던 네 번째 시리즈였던 E-F에 이어 약 2년 5개월 만에 실연으로 다시 만나게 된 이아라에 피아노는 지금까지 맡았던 박휘암 대신 안은유가 앉았다.


연주자들은 악기 상태와 매커니즘에 의존적일 수밖에 없는데 대가는 연장 탓하지 않는다고 도구를 어떻게 활용하느냐도 연주자의 과제이다. 조율과 감각과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자. 피아노야 조율만 잘돼 있다면 음이 어긋나지 않겠지만 현악기는 활을 켜는 와중에 인토네이션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일부러 시간을 내어 사전 현장 리허설을 하면서 균형을 맞춰야 한다. 그건 바이올린 하나만이 아닌 피아노와 전체 사운드가 얼마나 매끄럽고 투명한지 조망하면서 마리아주(Mariage)를 이루는 과정이다. 바이올린이 서툰 사람이 스트라디바리우스를 하는 거와 천재 바이올리니스트가 싸구려를 연주하는 것 중 무엇이 좋은가에 대한 필자의 대답은 음악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니 사람을 택한다.


고음으로 도약할 때, 특히 단6도에서 피치가 안 맞으며 종지음의 도달이 불안정하긴 했지만, 야나체크의 소나타 4악장 Poco Mosso 마장조 2주제에서의 E와 B음으로의 완전4도 하향과 피아노와의 유니즌은 선명했다. 현의 16분음표에 피아노에서 이어받은 선율이 옥타브로 펼쳐질 때는 깨끗했다. 곡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러시아 군대의 행진을 나타내는 60에서 81마디까지 피아노의 불안정한 트레몰로에 G현 테누토는 ‘세헤라자데’의 ‘동방의 춤’의 원곡 2악장 주제를 IVa에서 할 때 처럼 활을 길게 쓰면서 마르카토와 스타카토의 차이 등 아티큘레이션을 또박또박 시전하였다.
민속적 스타일화(Folk Stylization)를 구현하기 위한 3악장에서의 민속 음계와 4분음표와 8분음표로 이루어진 규칙적이고 단순한 리듬, 네 마디와 여덟 마디 단위의 짝수 마디의 악절이 피아노와 중압과 중량이 일치하며 찰졌다. 이는 코른골트 2악장도 마찬가지였다. 이아라는 그 또래 여성 바이올린 연주자에게 나타나기 시작하는 스테미너 부재로 인한 집중력 감퇴와 그로 인한 일관적인 흐름의 불규칙성을 타파하고 응집력이 강했다.
전쟁 전후 러시아 문학에서 영감을 받은 음악적 장치들을 사용하여 러시아 전사들을 나타내려고 한 야나체크의 구어체 선율, 예를 들어 Db 도리아로 나오는 9와 11마디의 하향스케일이 중간 46에서 58마디의 바이올린 중음과 함께 구간 안에 모자이크식으로 극적인 면을 부각하며 ‘탈전통화’로 야나체크의 리얼리즘적인 성향을 충실히 반영하였다.
4악장에서 이아라가 보여준 굵은 선과 음색의 대비는 자연스레 코른골트 4악장 ‘가면무도회’와도 일맥상통하는 해석이었다. 피아니스트 안은유는 실내악 경험이 많은 게 자연스레 드러났다. 상대방의 소리를 들으면서 호흡을 맞추었다. 구성에 대한 이해를 드러내며 야나체크에서 2박 계열(Duple Meter)과 선법성이 강조된 단조와 느린 템포의 시작과 템포의 대비들을 조정하면서 암울한 분위기와 구간별 구조(Sectional Structure)간의 특징을 효과적으로 반영하였다. ‘둠카’와 ‘세헤라자데’ 모두 기저에 깔린 춤곡풍의 바운스(Bounce)가 묻혀버린 점이 아쉬웠다.
또한 ‘세헤라자데’에서의 애가 타는 듯한 교태와 살랑거리는 관능미까지 이아라와 안은유에게 바라기는 너무 과하지 않았나 싶다. 자기들이 비루투오소로 한 시대를 풍미한 자기도취형 스타의 끝판왕인 파가니니, 사라사테, 크라이슬러 등의 작품은(이자이는 좀 다르긴 하지만) 화려한 퍼포먼스와 쇼맨십이 넘쳐나야 하는 기예인데 그런 면까지 이아라와 안은유에게 요구하는 건 욕심이긴 하다. 그래도 둘 다 원전인 관현악 판 ‘세헤라자데’의 감상과 경험을 통한 체화가 선행되었더라면 조금 더 입체적이었을 텐데….
두 사람 모두 이번 음악회를 위해 새로 익힌 곡들이라는 건 들으면 안다. 비록 한번 꼬이기는 했지만, 앙코르 ‘싱코페이션’은 분위기와 체감부터 다르지 않았는가! 이아라가 잘츠부르크에서 수학하면서 오스트리아 왈츠와 기상을 충분히 접한 기질이 다분히 드러났으니. 상술했다시피 이아라는 뚝심 있게 레퍼토리를 확대해 가면서 알파벳 시리즈를 이어오고 있다는 자체로 칭찬과 인정을 받아 마땅하다.
나가기 전에 오늘 해설을 맡은 송현민의 공도 언급 안 할 수 없다. 안정적인 발음, 독주회 프로그램에 대한 성의 넘치는 학습도, 연주자를 배려하는 태도와 상황에 맞는 위트 등으로 음악회 해설의 정석을 보여주었다. 매번 강조하지만, 연주자가 무대 위에서 마이크를 잡을 때는 악기를 연주하는 만큼의 똑같은 연습과 예행연습을 하고 나와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다면 온전히 연주에만 집중하면서 이렇게 전문 해설자를 세워라. 이아라, 안은유 그리고 송현민의 조합으로 다음 알파벳인 L, M, N으로 넘어가길 바라며 어떤 난관과 허무, 어려움이 있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이아라가 알파벳 시리즈를 꼭 완주하길 진심으로 기원하고 응원한다.


評 성용원(작곡가, 본지 상임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