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루 피아노 리사이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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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5월 12일(화) 오후 7시 30분, 롯데콘서트홀

프로그램: 슈만 《숲의 정경》, 쇼팽 폴로네즈 2번, 발라드 4번, 슈베르트 즉흥곡 1번, 쇼팽 소나타 3번 (앙코르: 슈만 트로이메라이, 쇼팽 전주곡 16번, 왈츠 5번)


2025년 11월 21일, 그래미상 6회 수상에 빛나는 1944년생 81세의 거장 레너드 슬래트킨과 쇼팽 협주곡 2번을 KBS교향악단의 연주로 협연한 2025년 제19회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 우승자 1997년생 에릭 루를 7개월여 만에 다시 같은 장소에서 독주로 만났다. 작년 KBS와의 협연은 2025년 쇼팽 콩쿠르 우승자로 하기로 이미 협의가 이뤄져 있는 상태에서 2024년 KBS교향악단의 동유럽 투어 당시 바르샤바에서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을 협연했던 에릭 루였다는 점은 우연의 일치였다.


문학적 정취가 넘치는 슈만의 《숲의 정경》에서 에릭 루는 눈에 보이지 않는 슈만의 주관적 감성과 상상력을 객관적이고 상징적인 묘사들로 구체적인 이미지들을 재현하였다. 예를 들어 2번 <숨어있는 사냥꾼>과 8번 <사냥의 노래>에 분포된 사냥 나팔(Hunting Horn)을 울리기 위해 전의 약박에서 좀 더 길게 끌고 거기서 오는 탄력으로 뒷 화음을 눌렀다. 이는 마치 사냥꾼이 사냥감을 노리고 숨어있다가 갑작스럽게 나타나 사냥하는 모습 같았으며 4번 <저주받은 장소>는 프랑스 서곡 풍의 어둡고 장중한 리듬으로 장송행진곡 같은 비장한 느낌을 주었다. 어느 특정음을 의도적으로 길게 끄는 경향은 슈만의 8번에서 9번으로 넘어갈 때 특히 빛을 발휘했는데 이런 점은 발라드와 소나타 1악장에서 강한 페시지에서 약한 단락으로 넘어갈 때 보이는 에릭 루만의 독특한 접근으로 다가왔다. 《숲의 정경》은 숲에서의 주인공, 즉 슈만의 눈과 귀 등 오감 육부를 통해 체험한 슈만에게만 펼쳐지는 숲의 풍경이자 기대와 설렘, 불안과 두려움 등 다양한 감정들이 담겨있는 숲속 여행이다. 숲의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독일의 숲속에서 슈만이 마주치는 대상과 미지와 환상의 세계를 에릭 루는 매우 섬세하면서 감수성 넘치게 표현하였다.


쇼팽의 폴로네이즈 2번에서 율동적인 면을 계속 이었지만, 발라드 4번에서 베이스 F음이 몇 번 잘못 눌러지는 등 잔실수가 일어나더니 코다에서는 몇 군데 미끄러졌다. 이게 단발성 실수인가 했는데 2부 첫 곡인 슈베르트의 <즉흥곡> 1번에서도 페달로 묶고 빠른 속도로 몰아가 개별적인 음들의 명확성이 떨어졌다. 소나타 3번에 와서야 일반 등받이 의자에서 피아노용 의자로 바꾸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못갖춘마디 4개의 16분음표 음이 또랑또랑 나왔으며 2악장이 자연스레 흐트러짐 없이 구현되면서 연주자 자신의 만족도를 격상시켰다. 3악장은 꿈속에서 노니는 듯 몽환적인 분위기를 한껏 연출하였는데 지나치게 끌지 않았나 싶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지그시 눈을 감고 구름을 거니는 듯 무릉도원에 취해 유유자적하였지만 잠시 눈을 떠보니 양옆의 여성 관객들은 진짜 꿈나라에 빠져 새근새근 코를 골고 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4악장은 3악장의 상념에서 벗어날 만큼의 폭발적인 박력은 덜하였다. 4악장의 미끄러짐은 발라드 코다에서의 뭉개짐과 결합하여 실수라기 보다는 테크닉적인 결함으로 들렸는데 그건 앙코르로 연주로 왈츠 5번에서 확실하게 증명되어 빠른 페시지에서의 속주가 결점이었다.


쇼팽보다는 슈만과 슈베르트의 해석이 더 와닿았다. 단순 기교를 넘어 음악의 본질을 향해 사색하고 철학하는 자세가 인상 깊었다. 협주곡부터 소나타와 소품들까지 골고루 감상한 에릭 루의 쇼팽은 터치가 고급스러웠다. 거칠지 않았다. 누구처럼 페달을 쾅쾅 밟지도 않아 작은 소리까지 통제하려는 경향이 짙었다. 음과 음 사이의 작은 간격까지 풀어놓지 않으려 함에 청중들이 갑갑할 수도 있을 테지만 에릭 루의 음악 세계와 연주 지향점을 알 수 있는 독주회였다.


평: 성용원(작곡가, 본지 상임평론가)

사진 제공: 마스트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