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라 주미 강 & 김선욱 듀오 리사이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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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5월 23일(토) 오후 5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프로그램: 베토벤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1번, 레스피기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b단조, 바인베르크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4번,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Eb장조 (앙코르: 파라디스 시실리엔느, 엘가 변덕스러운 여자(라 카프리쉔느), 파가니니 & 크라이슬러의 라 캄파넬라, 쇼팽 & 밀스타인의 녹턴 올림다단조)


2020년 베토벤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전곡 음반을 출시한 주미 강과 김선욱의 듀오 리사이틀은 단순한 협연을 넘어, 두 연주자의 음악적 동반자 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무대였다. 바이올리니스트 주미 강과 피아니스트 김선욱은 불과 한 살 차이의 친구로, 브람스와 요하임의 관계를 떠올리게 할 만큼 긴밀한 호흡을 보여주었다. 불과 열흘 전 서울시향 정기연주회에서 본인지 직접 피아노를 치고 지휘한 베토벤 4번 협주곡에 브람스 2번 교향곡을 포함, 지난 2년간은 피아니스트보다는 경기필의 지휘자로 자주 접했던 김선욱을 실내악으로는 처음 만났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바이올린 소나타’라 줄여 부르며 피아니스트를 단순한 반주자로 격하시키는 풍토와 달리, 이번 무대는 작품 제목 그대로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임을 증명했다. 두 악기는 동등한 비중으로 서로를 지탱하며, 진정한 실내악의 본질을 구현했다.


김선욱은 이제 또래 연주자 중에서 거장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자신만의 길을 찾아 ‘무소의 뿔’처럼 묵묵히 정진하고 있다. 김선욱은 작품 전체를 조망하는 구조적 사고를 피아노 연주에도 적용했다. 주미 강은 일리야 라쉬코프스키와 함께 했던 2년 전의 부천아트센터 독주회 때보다 훨씬 상대방과 밀착하면서 안정적이면서 깨끗하고 맑지만 다소 거친(roughness) 현의 마찰을 한결 순화시켰다. 베토벤 1악장 발전부에서 1주제 모티브의 발랄한 가벼움은 2악장 2변주에서 왼손 옥타브 스타카토 부점 리듬과 함께 며칠 전의 베토벤 4번 협주곡 3악장에서의 아르페지오 부분이 연상될 정도로 절묘하며 베토벤 해석의 일맥상통함을 김선욱이 보여주었다면 주미 강은 여기에 선행되는 피아노의 역할을 충실히 따르고 강조하면서 균형을 맞추었다. 최근 들어 재조명되어 무대에 올려지는 횟수가 늘어나기 시작하는 1947년 작 바인베르크의 4번 소나타 3악장에서 전후 시대의 불안과 혼란을 반영하듯 긴박감과 스산한 정서가 강하게 드러났다. 레스피기의 소나타는 2부 2번째 곡인 슈트라우스의 소나타와 함께 두 연주자의 낭만성에 구조적 치밀함이 파고들어 두 작곡가의 독자적인 예술적 완성도를 성취하였다. 레스피기에서 공간을 뚫고 나오는 천근추와 같은 묵직한 김선욱의 마르카토에 길고 힘 있는 선(Line)적인 장대함으로 합류한 주미 강은 프랑크, 생상을 잇는 바이올린 순환 소나타의 결정을 맛보게 하였다. 공처가로 유명했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순애보가 만개한 후반부의 25분은 말러, 프로코피예프 등 천재들의 초기 청순작에서 보이는 과도함이나 무리수를 무리 없이 들려주어 작곡가의 이상을 꽃피게 해준 모범적인 전개이자 파트너 간의 합일이 무엇인지 증명한 이상적인 무대였다. 슈트라우스 청년기의 감수성과 열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가곡 풍의 2악장 안단테 칸타빌레 ‘즉흥곡’에서의 감미로운 아름다움과 편안한 자유로움은 안락하기 그지없었다. 약음기를 부착한 주미 강의 속삭이는 듯한 소리에 간소하게 펼쳐지는 피아노의 화음과 삼연음이 감정을 고조시키며 절정에 다다르게 하더니 여운을 길게 남기며 빛나고 화려한 3악장으로 이어지면 격정적인 폭발을 하였다.


앙코르로 4곡이나 들려주었다. 소나타를 4곡이나 했음에도 전혀 지친 기색이 없이 도리어 소나타를 감상하느라 탈진한 청중들을 향한 서비스로 익숙한 소품들의 달콤함을 선사하였다. 명징하고 섬세한 울림과 음향, 감성보단 지극히 절제되고 이지적인 면모, 악보에 충실한 전개, 바이올린과 피아노의 동체로 인한 강한 설득력, 이 4개의 키워드가 드러났던 올해 2월 이자벨 파우스트와 알렉산더 멜리코프와 비슷하게 작곡가의 의도와 메시지를 충실히 구현하고 복원한 연주자의 임무와 소명을 완수한 시간이었다. 궁극적으로 소리의 높고 낮고 길고 짧고 많고 적음을 기호로써 명시한 목표 지향적 기록이 악보라면 연주는 단순히 악보를 소리로 전환하는 것이 아니라 음표로 기록되지 않은 의미를 해석하는 과정이다. 오늘 콘서트에 임한 각각의 관객은 베토벤, 레스피기, 바인베르크, 슈트라우스의 작품들이 거미줄처럼 촘촘한 연상을 품고서 다음 연주회에서 새로운 기억과 추억으로 활성화되며 익숙해질 것이다. 베토벤에게서는 고전적 형식미를, 레스피기에게서는 신고전주의와 절충주의를 바인베르크에게서는 폴란드계 유대인으로서의 전쟁 후의 비통함을 그리고 슈트라우스에게서는 낭만의 끝판을 체험시켜 준 주미 강과 김선욱이었다.


평: 성용원(작곡가, 본지 상임평론가)